시 한편에 음식 한 입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hittite23 2025. 3. 10.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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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 치의 방과 한 달 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 국밥을 먹었다 순대 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랍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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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상

 

 

이 시를 감상하기엔 나이를 너무 먹어버렸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맞는 생각일까?

그런 의문도 그림자처럼 뒤따라 왔다.

 

어떤 게 맞는지 모르지만, 나는 딸들을 생각하며 다시 시를 읽어봤다.

시란,

소설과 달리 여러 번 읽어도 괜찮다. 심지어 달달 외우며 씹고 곱씹어도 되는 장르가 아니던가.

 

처음 내가 이 시를 읽었을 때 20대 초반을 살고 있던 내 딸들, 이젠 30대 중반을 살고 있고 한 녀석은 자식까지 키우고 있다. 아, 세월이 무상하구나. 돌이켜보면 나는 이 시에 나오는 70년대 연탄가스 중독을 경험했던 세대이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아현동 자락의 낡은 한옥집 무더기를 경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의 딸들은 결코 그런 경험은 할 수 없다. 세대가 다르니까. 나랑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의 정신이 여행하는 곳과 딸들 정신이 유영하는 장소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동시대에 '생존'해 있다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이라고 할 수 없다. 이건 정말 충격적인 사실인데 그 사실을 어느 날 어느 순간 직관처럼 깨달아버렸다. 마치 시인에게 타전되어 버린 '거짓말'처럼..

 

내가 젊음을 보내고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와 같은 세대였던 대부분의 이 나라 백성들은 이제 연탄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나는 직장 생활할 때, 가끔 회사 직원들과 옹골레 순대 국밥집에 가기도 하였지만

우리 딸들은 순대 국밥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아 큰 딸은 모르겠는데, 둘째는 순대 국밥을 안 먹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어쩐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MZ세대 젊은이들이니 큰 딸도 안 먹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아, 갑자기 순댓국 얘기를 꺼냈더니 순댓국 생각이 난다. 사실 나도 순댓국 먹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왜냐구?

 

작년 말 물가가 폭동처럼 치솟을 때,

정말 식음식재료값과 외식비가 미친 듯이 올라가서 왜 세상사람들이 물가 오르는 걸 가지고 시위벌일 줄 모르고 민주노총이니 무슨 정당이니 권력다툼 놀이에 이용되어 그따구 시위집회에만 개발에 땀나듯 돌아댕기냐고 툴툴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자주 가던 순댓국집도 가격이 올라갔는데 나중엔 사용되는 재료까지 부실해지더니 음식 맛도 비실비실해지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 체인점 사장에게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는 기미가 안보이자 마침내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그 음식점을 내왕하던데.. 내가 유별난건가? 나는 꼭 내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죄책감까지 들었었다. 젠장, 세상이 그리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시를 읽어보는 것은,

비록 내 딸들이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한 집에서 사는 경험을 하지는 않지만,

젊음이라는 게

미래가 불투명하고 현재는 가진 것이 없으니

이 시인의 젊은 날의 겪음처럼

우리 딸들의 무의식엔 동질의 불안감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런 궁핍함을,

정신적으로 빈한한 겪음을 겪을 수도 있는 딸들의 마음과 성정을 함께

보듬어 안아 보고픈 요량이 있기 때문이었다..

 

 

Part 2.  음식 한 점(입)

순댓국

 

글이 길어져서

음식 한 입에 대한 기술은 생략하고, 순댓국 한 그릇만 올리기로 한다.

 

순댓국

 

불현듯 떠오른 생각인데..

랍스터를 넣어서 끓인 순댓국 맛은 어떨까?

 

양념한 랍스터 한 접시

 

아님, 그게 좀 안 어울리면 따로 랍스터 한 접시를 순댓국과 같이 먹으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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