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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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딜까?
히타이트는 자신이 혼수상태, 즉 코마에 빠져 있었던 느낌이었다. 우주비행에서 간혹 겪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보니 답답했다. 마치 어디론가 볼모로 잡혀가는 듯한 더러운 느낌마저 일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더 지나가자 히타이트는 눈을 뜰 수 없었지만 빛의 파동 속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빛의 잔상이 피부의 감각으로 전해오는 것이었나? 그에게는 텔레파시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감각의 잔상이 남아서 신체 주변을 떠도는 것일수도 있었다.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하여, 수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여행을 하였던 존재는 마음을 추스리려 했다. 하지만 일순간의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여정의 끝머리에서 백척간두 같은 장소에 위태롭게 서 있다고 추정한 히타이트는 차원의 경계를 넘어가는 존재처럼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그와 동시에, 우주의 위대한 별 종족의 하나에 속했던 족속 히타이트는 마치 어린 왕자가 사하라 사막에서 무너지듯 지구별의 한 소도시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히타이트 머리 위에는 아담스키형 비행접시가 원을 그리며 고요히 떠다니고 있었다. 그 비행접시 안, 조종석에 한 생명체가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생명체는 앉아서 제어장치 위에 손가락을 얹어 놓은 채 물끄러미 히타이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시하는 그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했다. 이곳, 창백한 푸른 별은 히타이트를 데리고 온 그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목적지였다. 그 생명체는 람시스라 불렸다.
람시스는 생각했다.
'히타이트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는 이곳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운명에 순응하게 되겠지.'
람시스는 몇 초간 무표정하게 계기판의 스크린을 응시하더니,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듯했다. 단정한 슈트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 람시스. 지상에 나자빠져있던 히타이트가 람시스의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비행접시 속의 람시스의 모습 뿐 아니라 그가 하는 생각까지 마치 텔레파시처럼 히타이트에게 송신되어오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이곳에서 나고 자라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닌 <스스로 살아가는 자>의 운명을 타고났으므로. 그것은 히타이트의 문제이지 나(람시스)의 일은 아니다.'
그 소리를 들은 히타이트는 사막의 모래 위에서 고꾸라졌던 어린 왕자처럼 전율을 일으켰다.
암만 생각해봐도 히타이트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주선에서 떨어진게 분명했다. 그 다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완전히 낯선 세계였다. 창백한 푸른 별, 아니 이곳 지구별은 그들 종족에게 있어서 전설 속의 행성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들과 비슷한 형상의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는 조그만 혹성.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지만 숨막히게 아름다운 별. 그러나 그들 족속은 한 번도 여행해보지 않았던 미지의 행성 지구...
“여기는…”
히타이트가 고개를 들어 람시스와 소통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지만 옹알이를 시작하는 갓난아기처럼 그의 시도는 힘이 약했고 임팩트가 없었다. 당연히 그의 생각은 람시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옆에서 보면 히타이트는 여전히 의식을 추스르지 못한 모습이었다.
람시스는 미련없이 우주선의 출발 버튼을 눌렀다. 그는 간략하게 멘트 했다.
"네가 내린 곳은 이제 너희의 새로운 세상이야."
아담스키형 은빛 우주선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떠올라 자신의 모습을 감추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람시스는 지구별의 대기 위로 솟구쳐 오르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있어."
히타이트는 그 말에 귀를 열고 기울였다. 그의 의식은 아직 혼란스러웠지만, 람시스는 매우 중요한 존재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떠나려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시츄에이션이었다. 히타이트는 그저 '신족', 'AI족', '여행족' 같은 은하계 행성들을 채우고 있는 종족이름을 단어로 떠올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람시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아마도 공중으로 솟구친 우주선 안에 있으면서 텔레파시로 히타이트와 통신하는 듯했다.

"나는, '여행족' 출신의 우주비행사야. 우리는 신족이나 AI족처럼, 어느 특정한 물리력을 타 족속들에게 임의로 행사하는 종족은 아니지. 그렇다고 아바타족도 아니고, 그냥 태양풍처럼 우주를 떠도는 자, 길을 따라가는 여정을 업으로 삼는 존재일 뿐이야."
히타이트는 불현듯 그의 건조한 멘트가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암튼 그 남자의 말대로 해석하면 히타이트 자신은 은하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신족', 이른바 예수나 부다를 탄생시킨 종족의 일원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 람시스가 계속 말했다.
"너도 나처럼, 새로운 행성에서 여행을 이어가게 될 거야. 이곳, 지구별에서 네가 여행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너는 다시 고향 별 시리우스로 돌아갈 수 있단다. 뉴프론티어의 개척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히타이트는 그 말이 자신을 위한 이야기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선택사항이 아니라 일종의 통고가 아닌가. 그로서는 이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람시스가 말하는 '여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왜 그가 하는 말이 생경한 걸까? 나도 같은 여행족이라면서.
"여행…?" 히타이트가 되뇌었다.
"그렇다, " 람시스가 비로소 히타이트의 말에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이란, 수단이 아니라 너를 성장시키고, 네가 새로운 별을 찾을 수 있는 목적이며 열쇠가 될 것이다. 신족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씨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전설은 알고 있지? 지금도 바티칸시국에 가면 도시 안에 그 열쇠형태가 보일꺼야. 그와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된다. 그리하여 지구별에서 너의 길이 끝나면, 너에게는 열쇠가 주어질 거고 시리우스로 돌아가는 문도 열리게 될 거야."
히타이트는 침묵했다. 그러자 람시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멘트 했다.
"행운을 빌어, 히타이트. 이 길이 너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길."
그 말을 분수처럼 흩뿌려 놓고, 람시스는 망망대해 같은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쳤고,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시야의 가장자리에 도달할 때쯤 그가 모는 은빛 우주선은 팟-하는 반짝임을 남기고는 우주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히타이트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사위를 돌아보니 그의 주변에는 생경한 것들로 가득했다. 낮은 구릉에 가득한 잡초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그리고 한쪽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 저기 지구별 사람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러나 충격적인 건, 히타이트의 생김새 역시 지구인들과 똑같았고,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던 사람마냥 지구인들은 그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히타이트에겐 여전히 지구의 중력, 공기의 성분, 대기를 떠다니는 산소를 마시는 맛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용을 썼다.
'그래..' 서서히 히타이트는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안다. 이제 그가 머물 곳은 바로 여기, 지구별의 한 구석탱이 코레아 하고도 서울이라는 소도시다. 하지만 히타이트는 그의 존재가 이 세계와 어떻게 연결될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해나가야 하는 건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