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 Story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 - 양들의 세계에 들어가다

hittite23 2025. 3. 2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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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Gustav Klimt 作 / Untitled

 

1

 

어느 날 히타이트는 지구별로 내동댕이쳐졌고,

모시에 동방의 은둔지국이라 불리는 나라, 남꼬레아에 들어갔다.

 

어떻게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경로는 불분명하다. 그냥 들어갔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들어간 곳이 18세기 때인가 자칭타칭으로 은둔의 나라라는 별칭으로 불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가 은둔지국이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세계의 중심, 중꿔의 오른팔이며 사람들에 의해서 동방 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좋은 나라'라고 자찬하고 있었다.

 

여기서 <예의>라고 하는 것은

세계의 중심국가 고대 위인 중 하나가 창시해 낸 생활철학의 일종인데, 아이러니하게 발원지인 중꿔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 사상의 편린에 불과했다. 반대로 중꿔에 대한 짝사랑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강하였던 은둔지국(어쩌면 은둔의 성향은 이 씨 왕조 대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중꿔 인민들이 일개 철학자의 하나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위인을 신주 떠받들 듯 치켜세우며 그 신주 밑으로 들어가서 보호받는 삶을 희구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나라 전체가 호들갑 떨면서 조정 대신에서 시정 노비에 이르기까지 중꿔의 위인 공구(孔九)에 안달하였을까. 그러니 이 나라 인민들은 당연지사처럼 그의 말 한마디, 그의 글 한 줄에 오줌을 찔끔찔끔 흘리며 헝븐(흥분의 MZ세대식 표현)하는 것이었다.

 

기록으로, 실재하는 건물로도 그 증거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공구의 학문을 가르치는 성균관이라 불리는 대학을 세우고, 그를 칭송하는 사당 수십 개를 지경 곳곳에 건립하고 마침내 그를 나라의 근본사상가로 옹립하였던 역사가 시뻘겋게 살아 있었다. 그리하여 공구 씨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발설하였던 <소년이로학난성>이니, <남녀 칠 세 부동석>이니 하는 웃기는 문구들을 이곳 동방의 은둔지국에서는 저잣거리 서민들까지 머릿속에 달달 암기하며 탑재하고 다녔다. 아.. 히타이트는 그런 풍경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점도 없지 않았다.. 지금 그런 나라에, 히타이트는 잠입해 들어갔다.

 

 

그리고 한 해가 바뀐 달력상에서.

1월의 추위가 기승을 부릴만한 어느 날, 히타이트는 아침에 눈을 뜨자 조정의 뉴스를 시청한다.

푸하하하하-

히타이트는 종편이라 불리는 뉴스채널 그룹 군 중 하나를 선택하여 시청하기 시작하다가, 바보상자 안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 나오는 사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파안대소해버리고 말았다. 이를 테면 이 나라 여제는 일종의 권력 지지기반의 하나인 비서실이라는 옥상옥의 조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불법조직을 모든 인민들은 마치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일인 양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행자가 느끼는 신기함, 그런 내음을 히타이트는 '비서실'이라는 조직하나에서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여제의 조정에서 많은 비밀을 취급하던 우 씨 성을 가진 민정수석이라는 신하 하나가 인민의 대표회합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자 등원을 거부하고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히타이트의 눈에 비치는 그 뒤의 풍경이 더 개그스러웠다. 국회를 비롯한 나라의 주요 정치권력이 마치 뒤집어질 듯 술렁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왜 그러지?

 

여행자의 눈에는 토착민들이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장점 때문에 이 세상, 온 우주에서 여행이란 컨텐츠가 추천되고 실행되는 것이며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후기로 서로 공유하면서 존재의 레벨업을 추구하는 게 아니겠는가.

 

 

사실 은둔의 나라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구중심처에는 자신의 심지를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물-김 비서왕-이 있었다. 이 비서왕은 나이가 70대 중반을 훌쩍 뛰어넘는 인물로 이를테면 환관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존재였다. 환관의 무리라고는 해도 우두머리라서 곧잘 TV를 통해 모습을 대중에게 드러내곤 했는데, 그렇게 TV로 모습을 내보이는 그가 온갖 정치적 논란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가는 처세술이 특이했다. 히타이트처럼 돌려 말하기가 안 되고 거짓증언하는 게 체질적으로 불가능한 족속에게는 당연히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암튼 은둔지국의 분위기상 그가 여제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지목되지 않는 것이 이상스레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아, 왜 그런 생각까지 품었는가 하면 여제도 이미 60을 훌쩍 넘은 논네라서 70넘은 비서왕과 짝짝쿵 한다 하여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가십거리가 한 톨이라도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히타이트는 비서왕이라는 작자가 단순히 막후 실권자로 존재하면서 사람들의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릴레이 되는 반찬거리 또는 안줏거리로 소용되는 게 다일까? 그런 의심스러움이 움터나왔다.

 

21세기에도 <환관정치>라는 구시대의 유물 같은 단어를 창고에서 꺼내어 훌훌 먼지를 털어내어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나라... 어떤 이들은 국적 항공사의 여 실권자가 심기불편하다해서 땅콩 회항을 지휘한 후 나라 전체의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주목하라 했다. 그게 다 여제의 정치적 문제를 눈 가리고 아웅하기 위해 사용된 술법이라고 한다. 히타이트는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쩍 뛰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의 신분이란 낮고 낮은 '여행자'에 불과했으니.. 

 

참 우스운 나라이다. 히타이트는 자기가 어떻게 은둔지국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들 모두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만은 명백했다. 자신이 사는 나라에선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소설가라 하여도 이런 상황을 이야기로 그려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은둔지국에서는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로 소개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 나라이며 신기한 나라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히타이트는 한 때 지구별 음유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를 따라 사유놀음을 시도했다.

 

'옛날 옛적 걸리버가 대인국과 소인국을 여행했고, 외눈박이 나라를 여행했던 일들을 책으로 만들어 날개 돋친 듯 팔아치운 적이 있었지. 아마 걸리버에게 좀 더 여행신공이 내재해 있었더라면 <은둔지국> 이야기도 풀어놓게 되었을 거라 여겨져. 그런 점에서 나는 운 좋은 사람이야. 은둔지국 여행이라는 신비로운 겪음은 지구별 여행자로서 축복받은 일이라 할 수 있으니까...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 틀림없어.'

 

<은둔지국>의 남자들은 자국의 여자를 가리켜 사회적 약자 내지는 사회적 무능력자라고 깔보면서 한편으론 권좌에 앉아있는 여제에게 온갖 아첨과 딸랑질을 마다하지 않고 있잖아? 그들은 정말 <예의>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은둔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웃기는 행태를 웃기는 일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저지를 수 있는 것일까?

 

히타이트는 그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건 박서보의 단색화래..

...............................

 

다시 생각해 보니 어느 날 히타이트는 한 마리 중년 양이 되어 있었고, 그날 의아스럽게도 세눈박이 양들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건 아주 오랜 내력이 있는 이야기다. 즉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딱정벌레로 변해있었다는 것보단 훨씬 인간적이며, 매우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여기서 세눈박이라 말한 것은 실제의 세눈박이들이 바글거리는 지경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세 개인 양들.. 은둔지국에는 그런 양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겉모양은 똑같이 두 눈, 한 코에 한 입, 그리고 두 귀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세 개의 눈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또 하나의 눈이 실제 이마로 튀어나온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히타이트가 그 지경에 발을 내디뎠을 땐 이미 세 개의 눈을 가진 양들이 도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걸 본 히타이트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지경은 원숭이 나라로 건너가는 돌다리(반도) 정도라 여겼던 곳인데... 반도는 땅의 기가 세기 때문에 이런 돌연변이 종들이 뛰어다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으나 세눈박이 양들이 바로 눈앞에서 출몰하고 있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팩트였다. 목격자 히타이트는 불현듯 자기 볼딱지를 꼬집어 보았다. 이거 혹시 내가 꿈을 꾸는 거 아님?

 

히타이트는 의례히 그러했듯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경로는 불분명했다. 그냥 들어갔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 양들은 눈이 세 개였던 것이다. 아.. 이런 황당함, 이런 낭패감을 또 겪게 되다니.

 

왜 기시감이 들기라도 하니?

 

어디선가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두려웠고 한편으론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 지경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들어와 버린 지경이었고, 그 테두리 안에서는 들어온 구멍이 어딘지 찾기 어려웠다. 들어온 구멍을 찾지 못하니 당연히 나가는 구멍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세눈박이 양들의 생김새는 생경했으나 그들이 겉으로는 두눈박이처럼 행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ㅎㅎㅎ 히타이트는 그런 사정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면서 두 눈 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눈이 무슨 용도를 가지는 것인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나라 양들은 각기의 눈에다 서로 다른 별칭을 붙이고 있었다. 오른쪽 눈은 <보수> 요 왼쪽 눈은 <진보>라 불렀다. 오른 눈이 찡긋거릴 때 <진보> 눈동자가 빛을 발하였다. 이를 테면 어떤 양은 오른쪽 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양은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언제 모습을 드러내었는지 불분명한 세 번째 눈의 별칭은 <종북>이었다.

 

히타이트는 그렇게 편가름 하듯 이름 붙여 부르는 게 이상하기만 했다. 히타이트가 살았던 또 다른 세상에선 눈은 두 개요, 두 눈이 같이 기능함으로써 거리와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이용하였는데 이 나라의 양들은 한쪽 눈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신기한 양들이었다. 한쪽 눈알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편한 것은 아닐 텐데.. 그것을 못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보수로 불리든, 진보로 불리든 두 눈 안에 모든 게 포괄적으로 들어와 보일 텐데 종북이란 눈은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히타이트가 어렵사리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 나라 양들은 반세기 전, <빨갱이>라는 은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빨갱이는 왜 빨갱이여야 했는지 모르지만 유추하기로는 늑대 중에서도 아주 포악하고 성질 더러운 나쁜 늑대를 그렇게 별칭 하였다는 것이다. 늑대란 양들이 서식하는 지경의 윗동네에서 부랑아처럼 떠돌아다니는 식양의 동물을 가리켰다.

 

늑대는 항상 남쪽의 순한 양들이 사는 지경을 침노하려 벼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그런 마각을 드러낸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때 남쪽 양들이 수많은 피를 흘렸기 땜에 아마 북쪽에 서식하는 질 나쁜 늑대들을 빨갱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여겨졌다. 그래서 남쪽 지경 순한 양들의 세계에서 '빨갱이'는 금기의 단어가 되었다. 만에 하나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조금이라도 뻘건 물이 들었다고 판단되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삼대에 이르기까지 피해를 당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실제로 그런 암시를 준 통치자가 있었다. 그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독한 양>으로, 권좌에 오른 다음에는 양의 모습 위에 <장닭>의 탈을 쓰고 나타나 동족을 쪼아대던 양이었다. 그는 십팔 년간 남쪽 양들의 지경을 통치하면서 드물게 대가리를 치켜들고 대항하는 양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빨갱이>란 부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남쪽 지경에 서식하는 양들치고 그런 구태가 있었음을 모르는 양이 없었다.

 

그런데 세눈박이 나라의 양들은 아이큐가 나쁜 모양이었다. 양들은 자신의 지경에서 다른 동물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양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의도적인 필요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긴 했다. 북쪽의 질 나쁜 늑대를 상대해야 한다는 환경적 제약 말이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인은 양들에게 험한 역사를 만들어내곤 하였다. 섬에 사는 사나운 원숭이들은 틈만 나면 뭍으로 기어오르려 하였고 더욱 두려운 건 북풍에 떠밀려 남쪽으로 넘어오려는 늑대들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빨간 늑대의 윗동네엔 또 다른 종족인 시꺼먼 늑대들이 바글바글 떼를 지어 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히타이트는 고개를 꺄우뚱하지 않을 수없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과거 <독한 양>의 난봉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단 말인가? 그의 딸자식이 <닭> 형상을 하고 <쥐>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권좌에 오르도록 놔둔 것도 문제긴 문제였다. 히타이트가 기억하기로는 닭의 친부가 독한 양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도 언덕배기의 양 떼들은 암탉을 지지하며 환호하였으니까.

 

그래서 <독한 양>의 시대를 거치며 인고의 삶을 살았던 양들, 그리고 그 깨어있는 양의 자식세대는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세기로 전진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런 새 희망의 기대 심리는 암탉의 등장과 함께 바벨탑처럼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는 언제 그런 희망세대가 존재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세눈박이 양의 나라로 탈바꿈하고 마는 것이었다. 늑대가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는 경우는 보았어도 양들이 모습을 바꾸는 것은 매우 진기한 일이었다. 히타이트는 참 신기한 풍경을 직접 목도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세 번째 눈은 감찰의 목적으로 생겨난 눈이 아니었다. 일부러 생겨나게-혹은 그려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였고, 종국에 가서는 그것이 가짜며, 빨갱이가 몰래 그려 붙인 것이기 때문에 찢어발겨져서 용도폐기될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실제의 눈이 아니므로 그냥 지워버리면 될 일인데, 그려 붙여진 눈에 불과한 것을 파헤쳐 버려야 한다고 생살까지 뜯어내는 것이 아닌가. 오오오.. 비위가 약한 히타이트는 그 광경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여 두 눈을 돌려 버렸다. 이 양들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아름다운 지구행성, 녹양방초가 우거진 지경의 한구석을 이토록 험한 모습으로 어지럽힌단 말인가?.. 히타이트의 머릿속에선 그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아, 그렇다면,

도대체 세눈박이 양들에게 칼날을 겨누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히타이트는 여행자의 감각, 제삼자의 눈으로 은둔지국을 서치 하듯 푸른 집 구중심처를 스크린 속으로 불러내어 살폈다. 그러자 히타이트는 아~ 가늘게 신음하며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제의 꼭두각시 '비서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여제와 도대체 무슨 관계에 있기에 노회할 대로 노회한 저 종자가 구중심처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양들의 세계를 휘저으려는 걸까. 히타이트는 전생에 사용했던 염력이 얼마나 작동하는지 가늠할 수 없어서 자신의 뇌리에 펼쳐진 스크린에 세심하게 살펴보았지만 그 장면이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지 장담하지 못했다. 어렴풋이 떠올려보는 전생의 삶, '여행족'의 나라 시리우스에서는 비록 '신족' 만큼 전지전능, <스스로 있는 자>로 살지 못했지만 텔레파시를 비롯하여 약간의 염력을 구사하였던 기억이 가뭄에 콩나물 기어 나오듯 스멀거리며 대지위로 삐져나오는 느낌적인 느낌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히타이트는

 

아~ 젠장.

지구별 여행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라고

독백했다.

 

Gustav Klimt 作 / Untitled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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