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에 음식 한 입

차단기 기둥 곁에서 - 서대경

hittite23 2025. 2. 23. 22:44
반응형

 

 

 

 

차단기 기둥 곁에서

서대경

 

어느 날 나는 염소가 되어 철둑길 차단기 기둥에 매여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염소가 될 이유가 없었으므로, 염소가 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한없이 고요한 내 발굽, 내 작은 뿔, 저물어가는 여름 하늘 아래, 내 검은 다리, 내 검은 눈, 나의 생각은 아무래도 염소적인 것이어서, 엄마, 쓸쓸한 내 목소리, 내 그림자, 하지만 내 작은 발굽 아래 풀이 돋아나 있고, 풀은 부드럽고, 풀은 따스하고, 풀은 바람에 흔들리고, 나의 염소다운 주둥이는 더 깊은 풀의 길로, 풀의 초록, 풀의 고요, 풀의 어둠, 풀잎 매달린 귀를 간질이며 기차가 지나고, 풀의 웃음, 풀의 속삭임, 벌레들의 푸른 눈, 하늘을 채우는 예배당의 종소리, 사람들 걸어가는 소리,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 어두워져 가는 풀, 어두워져 가는 하늘, 나는 풀 속에 주둥이를 박은 채, 아무래도 염소적일 수밖에 없는 그리움으로, 어릴 적 우리 집이 있는 철길 건너편, 하나둘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염소가 아냐, 지금 난 염소를 지켜보는 겨..

 

...............................................

 

나의 詩 감상

일단 이것이 시인가 산문인가 의심을 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나 역시 '산문'이라 해도 반박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요즘엔 '시'의 형식에 대한 파괴가 심하게 일어나서

이런 유형의 시를 일게 되었다.

 

뭐, 과거로 눈길을 돌리면 아주 별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천재시인으로 인정받은 김해경(이상)시인의 시는 이것보다 더 심한 형식파괴를 감행했었으니까.

 

나의 詩 감상

이제부터

 

내 둘째 딸이 좋아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변신>에 모년모월모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가 딱정벌레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와 같이, 시인 서대경은 밑도 끝도 없이 염소가 되어 차단기 기둥에 매였다.

 

염소란 어떤 존재인가?

기독교에서 양이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과 반대로 염소는 그 반대편 영역에 서 있는 존재, <죄인>을 상징한다. 여기서 <차단기 기둥 곁에서>를 쓴 시인이 기독교적 문화권에 자란 인물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어차피 시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창작자의 손을 떠난 이후는 그 작품이 독자의 것으로 넘어가버리는 것이므로 나의 입장, 나의 관점에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면 그만이다.

 

나의 관점, 즉 기독교적 문화권에서 성장한 인물의 관점에서 보니 아마도 붙잡혀 있는 짐승(염소)은 죄를 지었거나 꿈을 상실한 존재였기 때문에 지금의 처지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아, 이 말은 염소이전에 사람이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것인데 이것도 순전히 내 자유의사에 의한 해석이다.

 

그럼 이제 염소가 된 존재의 입장에 서보자.

차단기 기둥에 매인 검은 다리, 검은 눈과 작은 뿔을 가진 염소가 바라본 세상은 풀과 벌레의 삶 - 인간이었을 때 미처 느껴보지 못한 풍경 -이다. 지금, 염소가 된 시인은 풀에 주둥이를 박은 채(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걸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으므로) 사위를 살피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록 염소가 된 처지지만 엄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그런 소리를 들은 듯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어릴 적 자신의 집이 있던 철길 건너편 불빛을 바라본다.

 

슬픈 짐승의 모습으로 변신한 염소의 행동거지에는 카프카가 창조한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처럼 하찮게 죽어버릴 수 없다는 의지가 잠재해 있는 듯하다. 차단기 기둥에서 철둑길 건너편 불빛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꿈의 실현을 갈망하는 마음이 어려있다. 묶여있는 시인은 검은 다리, 검은 눈의 염소가 되어, 비록 저물어 가는 여름날이지만 염소 다운 주둥이에 염소적일 수밖에 없는 그리움을 가슴 가득히 품고 있다.

 

피융피융 기차가 사정없이 지나가는 위태롭고 불안한 차단기 기둥 곁에서....

아, 짠하네...

 

이럴 때는 애호박 찌개나 한 사발 흡입하면 개운해질 것 같다.

 

...............................

Part 2.  음식 한 점(입)

애호박 찌개

 

 

애호박 찌개

 

 

사람들은 어떤 때 애호박 찌개를 흡입할까?

 

애호박을 따는 시기는 아마도 초여름일 것이다. 그리고 애호박을 넣어서 끓이는 찌개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 된장이다. 즉 된장찌개에 넣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재료가 애호박이다. 하지만 다른 레시피도 있다. 얼큰 혹은 쫌 매운 굴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애호박과 함께 넉넉하게 푹푹 고아내듯 끓여낸 찌개를 먹으면 속이 풀리고 코가 뚫리는 느낌을 받는다.

 

아, 지금...

코를 좀 뚫어내면 속까지 확 풀릴 것 같다.

애호박 찌개가 댓길이지.

 

시원하고 담백한 그맛을 떠올리며

여름철에 먹기 딱 좋은 음식이 아니던가.

내 비록 차단기 곁에 묶여 있었어도 애호박찌개 한 사발이면 속이 확 풀리겠는데..

간장게장만 밥도둑이냐,

애호박찌개도 밥도둑으로 등극할 수 있다니까..

 

광주 식으로 굵게 썬 애호박과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애호박 찌개가 눈에 아른 거린다.

돼지고기 지방의 달달한 풍미에 연두색 애호박의 부드러운 맛과 식감이... 

 

 

 

 

 

 

반응형

'시 한편에 음식 한 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2) 2025.03.10
사랑 - 김수영  (1) 2025.02.26
영산 - 김광규  (0) 2025.02.25
똥파리 - 김상미  (3) 2025.02.2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2)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