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편에 음식 한 입

자연스러운 일​ - 임유영

hittite23 2025. 4. 19.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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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일 ​- 임유영

 


술을 끊은 지 여든 날쯤 지났나, 고등학교 동창인 Q와 연락이 닿았다. Q는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미 첫째는 여섯살이고 한 달 전 둘째를 낳았다고 했다. Q의 목소리로 그 소식을 직접 듣자니 가슴속이 따뜻하고 커다란 젤리로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온화하고 명랑했다. Q는 우리가 대학생 때 함께 종로에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 결혼과 출산처럼 큰일을 서로에게 알리지 않고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Q는 휴식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 옛친구들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내 이름을 검색해보다가 내가 시인이 된 것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Q와 함께 있으면 그의 다정한 기운에 안심이 되었다. 나는 늘 그에게서 내게 없는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온다고 느꼈다. 일광욕을 하듯 그 빛을 쪼이며 한 시절을 보냈다. 이십 년이 지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예전과 꼭 같았다. 월요일 오후였다. Q의 목소리 사이로 갓 태어난 아가의 여리고 달콤한 음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고향에 내려가면 Q의 집에 놀러가기로 약속했다. 나는 그와 꼭 닮은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렜다. 그 충만한 감정은 넘쳐흘러,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을 포근하게 감싸더니, 촉촉해진 표면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노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언덕길 오르기

 

...................................

 

나의 감상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한다.

처음엔 응애응애 울었다. 받아준 간호사가 일부러 엉덩이를 때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암튼, 울면서 탄생을 신고한다. 모르지. 혹시 당신은 웃으며 탄생신고를 했었는지. 대개 유아시절 자기 표현은 세 가지로 행한다.

울거나

웃거나

빤히 쳐다보기.

이 세가지가 유일하게 자기 표현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손은 뭐 하냐고?

아마 두 손을 꼭 주먹을 쥐고서 그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만지거나 뻗거나 뿌리치는 일도 처음엔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고 근육의 움직임을 요하는 동작이기 때문이다. 발길로 자기표현하는 사람도 있을까? 아기가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하여 그런 경우가 있을까? 드문 일이다. 조금 더 자라면 아기들은 스스로 힘이 생기기 시작하고 근육이 생기거나 근육의 움직임을 통하여 '동작'이라는 과업을 시도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단계를 밟는데 먼저 몸을 뒤집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시도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 아기들은 몸을 뒤집고 굴리기를 시도한다. 그 시도와 함께 손과 팔 뻗치기, 발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움직거리는 시도를 한다. 왜냐? 앞으로 기어가는 동작을 하려고.. 그런 기간에 비로소 옹알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가는 웃거나, 울거나, 빤히 쳐다보는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할 뿐이다. 

 

아마 이 시기에도 아기는 어떤 사람은 더 쳐다보고, 어떤 사람은 쳐다볼 뿐 아니라 웃고, 또 어떤 사람은 빤히 쳐다보며 어떤 인간인지 위험한 놈은 아닌지 살펴보는 중인데 이 인간이 그것도 모르고 지혼자 좋다고 다가와 아는 체하거나 말 걸거나 스킨십을 시도하면 불편하고 짜증스러움을 '울음'으로 표현한다. 그건 아기를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라면서도 비슷한 일은 일어난다. 학교다니기 시작할 때, 혹은 사춘기를 지나게 될 때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이 안 난다고?

 

그래. 장삼이사들은 그럴 수 있다. 기억 안 날 수 있고, 맹해서 그런 경험 자체를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족속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암튼, 나는 사춘기 때 그런 겪음을 충분히 해봤다. 어떤 거냐구?

 

학창에서 머리가 샤프하고 똑똑하고 사용하는 어휘도 아주아주 풍부해서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괜히 나도 유식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말 잘하는 인물이 되고 싶었고, 글 잘 쓰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이글거리게 됐다. 일종의 긍정의 자극제가 되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인물은, 혹은 여학생은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고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행복감을 느낄 만큼 신묘한 외모를 가진 경우도 있었다. 성경이나 종교화에 인물의 얼굴 뒤에 환하게 빛이 나는 동그라미 표시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일종의 후광이 비치는 인물표현인데, 그처럼 보기만 해도 그 사람 뒤에 아우라가 펼쳐지고 빛이 나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춘기를 지나 성인으로 가면서, 또 성인이 된 뒤론 청년, 중장년을 거치면서 더 높은 자리로 오르고 더 명예로운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간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고 십중 팔구는 그렇게 되어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즉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교범이 되고 본이 되는 그림은 특출 나거나 뛰어나거나 굉장한 존재론적 모습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삶이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는 임유영 시인의 시를 읽고,

'아 이렇게 평범한 상황을 바라보며 자연스럽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구나'

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마음을 부드럽게 쓰담해 주는 시는 좋은 시다.

'자연스러운 일'처럼 기분 좋게 해주는 시는 감동도 안겨다 준다.

평범해서 행복하다는 걸 알게 해 주니

고마운 시다.

 

이런 것도 '시'라고 할 수 있냐고 딴지 거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 주자.

개인의 자유이고 개취(개인의 취향)이니까.

 

근데 문학잡지에 실린 '시'라고 하니 정체성에 대한 고민까지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요즘 이렇게 형식을 파괴하는 시가 우후죽순처럼 발표되고 있다. 산문시 보다 더 서술형에 치우친 시. 소설에 가까운 시. 그런 시가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스토리가 있는 시가 상징과 암시로 뒤범벅된 시보다 더 좋다. 단순한 인간이기 땜에 그렇다. 그림도 추상과 초현실주의 작품은 싫어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였다. 암튼, 임유영의 시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좋다. 

 

 

Part 2.  음식 한 점(입)

부라타를 곁들인 호박크림수프

 

 

부라타치즈
부라타를 곁들인 호박크림수프

 

이 시에 등장하는 'Q'라는 친구,

그런 친구를 한 사람 가지고 있으면 정말 좋겠다 싶은 생각이다. 그와의 추억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흐르기 때문에, 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음식이라면 '따뜻한 크림수프'가 잘 어울릴 것 같다. 크림 수프 중에서도 '호박 크림수프'면 더 좋겠다. '호박 크림수프' 뿐만 아니라 부라타를 곁들이면 더 좋을 것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는 음식이 나의 마음과 육신까지 어루만져 줄 것 같기 때문이다.

 

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Q와의 재회에서 느낀 따뜻한 감정을 살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 맛은 마치 오래된 친구와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참고

부라타(burrata)는 모차렐라와 크림으로 만든 이탈리아의 치즈이다. 

치즈 외피는 딱딱하며 내부는 리코타(치즈)와 모차렐라의 특성이 함께 나타나 부드러운 맛이 난다. 

부라타는 이탈리아어로 '버터를 바른'이란 뜻이다.

 


요리의 원재료
1) 호박 1통 [약 900g, 얇게 썬 것] 2) 코코넛 오일 1.5큰술 3) 양파 1개 [깍둑 썬 것] 4) 다진 마늘 2작은술 5) 다진 생강 0.5작은술 6) 부라타 치즈 1큰술 7) 호박씨 1작은술 [장식용]

요리에 필요한 양념
1) 중화 해선장 1작은술 2) 파프리카 가루 1작은술 3) 강황 가루 0.5작은술 4) 고수 0.5작은술 5) 세이지 0.5작은술 [다진 것]

요리에 필요한 소스믹스
1) 채소 육수 500ml 2) 코코넛 밀크 35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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