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지는 푸르다-서대경
나는 결국 이 길 위로 돌아와 있다, 이 길은 무엇인가,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본다, 아무도 없다, 오직 싸늘한 푸른빛에 잠긴 텅 빈 길만이, 저 너머로 끝없이 뻗어가는 소름끼치는 푸름만이 내 앞에 있다, 무엇이 나를 이 길 위로 옮겨다 놓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아버지의 매질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열세 명의 아버지의 매질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일년에 한두 번, 그러다가 한달에 한두 번, 언제부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이 길 위로 돌아와 있다,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 아니 일년의 대부분, 그런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이제 서서히 머리가 벗겨지는 나이가 되었다, 집에서 아내가 집어주는 사과 조각을 씹으면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또는 직장에서 서류를 검토하다가, 누군가의 명함을 교환하고 악수하다가… 돌연 섬광이 터지고, 나는 의식을 잃는다, 의식을 잃고, 다시 깨어나 눈을 뜨면, 내 앞엔 소용돌이치는 푸른 길이, 소름끼치는 낯익은 길이, 푸른빛의 무지가, 무한한 공허가 놓여 있다, 아니 내게 직장이 있었던가? 아내가 있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자식도 있을지 모른다, 알 게 뭔가, 더 이상 이 길 이전의 삶과, 이 길 위의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 나는 이른바,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치매를 앓고 있는지 모른다, 평생의 과업처럼, 평생의 사업처럼, 그러나 지금 나의 말쑥한 옷차림과 내가 들고 있는 검은 가죽가방을 보건대, 이 길 이전의 나의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푸른 공기에 짓눌린 이 텅 빈 길을 한참 걸어올라가 버스정류장에서 보란 듯이 버스를 탈 것이고, 지하철을 갈아탈 것이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예전의 삶이란 무엇인가, 돌아간 내게 그동안 어디에 있었느냐고, 어디에 갔었느냐고 물어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한다,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에 대한 기억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니 서서히, 아니 규칙적인 속도로, 아니 치매환자처럼, 아니 정신분석가처럼, 아니 병든 개처럼, 그런데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기억은 나의 기억이 확실한가? 나는 어디로 돌아갔던가, 집으로? 학교로? 학교라니? 가방 속에 든 물건들을 보건대 나는 교수인지도 모른다, 몇 권의 책, 비트겐슈타인, 프레게, 프레게? 그러나 또 가방 안엔, 휘발유가 담긴 작은 통, 담뱃값, 먹다 남은 빵 봉지, 죽은 쥐, 스패너, 깨진 사기그릇, 더러운 헝겊 따위가 들어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앞을 본다, 아무도 없다, 푸른 공기에 짓눌린 텅 빈 길만이 무한히 지속된다, 아니 단속적으로, 아니 동시적으로, 아니 악령처럼, 아니 신성처럼, 아니 심연처럼, 아니 구두처럼, 아니 악어처럼,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나는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어디로? 나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의식은 지워져가는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더듬고 있고, 동시에 필사적으로 망각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나는 것은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 지금처럼, 누군가, 그런 것 같다, 나는 가방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다, 무언가 희미한 기억이 떠오른다, 문득, 아니, 예상대로, 예상 밖으로, 아니 필연적으로, 아니 환영처럼, 아니 악몽처럼, 정류장, 마을버스, 이것은 무엇인가? 섬광이 터진다, 기억의 섬광, 그런 것 같다, 도로 위의 태양, 빗방울, 허공에 들려오는 삶의 웃음소리…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비가 내리는군요, 어제도 비가 내렸습니다, 누군가, 섬광 속에서, 그러나 나는 예전에도 이 섬광을 여러 번 보았지, 그런 것 같다, 또다시 섬광이 터지고, 푸른 길이 창백해지고, 나는 본다, 가로수, 여름, 행인들, 차들의 경적소리, 섬광 속에서 나를 흘깃 돌아보며 버스에 오르는 한 사내를 본다, 망각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런 것 같다, 나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을 치켜든다, 아니 손을 치켜드는 시늉을 한다, 나는 연기한다, 나의 고통, 나의 삶, 나는 정류장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아니 앉는 시늉을 한다, 정류장 차양 끝에 망각의 물방울이 맺혀 있다, 물방울을 본다, 보는 시늉을 한다, 물방울이 떨어지고, 다시 물방울이 고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이는 척한다, 누군가 낄낄거리며 나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 것 같다, 나는 본다, 보는 시늉을 한다, 물방울 속에서, 망각의 섬광 속에서, 검은 가방을 들고, 도망치듯 걸어가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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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상
혹시 이 시에 등장하는 사내가 당신 아니니?
이 시의 분위기에서 나는 얼핏 구운몽(최인훈의 소설)과 연결되는 고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어.
<푸름> 그 경이롭고 신선하며 알 수 없는 친근함을 머금은 색채를
또 다르게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푸름>의 정체성은 다른 데 있는 것일수도 있어. 최종천 시인은 그의 시 <눈물은 푸르다>에서 멍을 우려낸 것이기 때문에 눈물이 푸르다고 갈파하였거든.
그래..
세상은 넓고, 알 수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많지. 그런데 말야,
혹시 당신이 연애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면
혹시 당신이 결혼에 실패하였다면
그럴만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거 아니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햇살이 결국 바람을 이기지..
그럼 해는 고체일까 기체일까?
해의 중력은 얼마나 될까? 어떻게 빛에너지가 무시할 수 없는 기체의 흐름으로 무장한 바람을 이기는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국 태양은 이 행성을 지배하고 행성을 따스하게 데울 것이다.
마찰열로 행성을 데우는 것보다 더 뜨겁게..
내가 아무리 푸르른 무지렁이에 불과하다고 하여도
그때가 되면 그날이 오면, 이 행성에서 사랑으로 한 여인을 데울 수 있을 거야. 태양처럼..
그 답은 당신에게 있지.
윤회하는 짐승처럼
윤회하는 무지렁이처럼
푸르른 멍자국으로 몸과 마음이 아리고 쌉쌀해지는 느낌을
느끼고 또 느끼고
그리하여 푸른 섬광처럼 어느 낯선 거리에 내팽개쳐지더라도 놀라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인생이란 게 뭔지 모르지만
인생이란게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걸 인정해야 해.
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슬픈 남자, 푸르른 멍자국으로 전신이 물든 작자는 딱 한 사람이 있지. 전광훈일까? 국사 1타 강사 전한길일까? 아니지 아니지 건희 남편이 있잖아. 개인의 밀실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있을 오직 한 남자. 그 남자는 그래도 한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해봤으니 후회는 없을 거야. 그렇지 않겠어? 정신이 미쳐서 인사불성이 되거나 폐인으로 행려병자처럼 죽어가지 않으려면 그렇게라도 자기 합리화를 해야겠지. 사시 9수까지 한 전력이 있으니 잘 견뎌내지 않을까? 그 옆에 한국 최고의 인조미인이 손을 잡아주고 있을 테니 뭐 행복한 남자네. 그 정도면..
지금 이 시간에 가장 기분이 째지고 입이 째지는 남자는 누구일까?
그거야 당근 그 남자 아냐? 일명 '보찢남'이라고 유명세를 떨친 그 인상이 일그러져가는 남자. 그 남자는 행복의 나라로 가고 있는 걸까? 불등잔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신세인 건 아니고? 모르지. 결코 모르지 불나방이 불등잔에 뛰어들 때 자기가 죽으리라는 걸 결코 모르듯이. 진짜 대텅까지 될 인물은 아닌데, 나라에 인물이 없어서 그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형국인거지. 그게 진정 행복이 될는지 아무도 모르지. 달빛신사가 대권을 잡았을 때 온 국민이 자기 일처럼 좋아했지만 고집불통과 내로남불의 신공을 신탁으로 기술전수받는 대신 얼굴은 우거지로 점점점 일그러져가더니 결국 용두사미 한 인물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그럼 이땡땡은 지금 불나방으로 변신해서 암것도 모르고 있는데 그게 자신의 행복추구의 꽃길인지 죽음의 길이 될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지. 무지몽매한 인간에 불과하니까.
아, 젠장 왜 이야기가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나.
역사적으로 볼 때,
위인이나 인물이 동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단 말이지.
민주인물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연달아 나왔으니 어느 정도 '시간조정'이 이어질 거란 말이지. 나는 그런 상념을 떠올리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민의 가슴에 푸른 멍이 푸르죽죽하게 들고 또 들더라도
'나의 무지는 푸르다'
라는 시인의 말을 새기고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Part 2. 음식 한 점(입)
바나나브륄레
자, 이제 음식 하나를 정해서 죽이러 가야 하는 timing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코스다.
오늘 읽은 시를 소화해 낼 음식으로
무얼 선택할까..
브륄레는 겉면을 열로 그을린 음식을 말한다.
좀 더 알아봤다. 브륄레(brûler)는 프랑스어로 '타다(burn)'라는 뜻의 단어로,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관련 음식(디저트)이다. 이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불에 탄 크림'이라는 뜻이다. 크렘 브륄레는 프랑스의 디저트로, 차가운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올리고 토치로 캐러멜라이즈 하여 만든 것이다.
그럼 오늘 우리가 먹으려고 하는 바나나 브륄레(brûler)란?
당근, 바나나를 구운 요리이지 뭐이겠나. 당부족일 때, 즉 가슴에 푸른 멍이 들었을 때 먹으면 좋다.
그러니 지금은 '나의 무지는 푸르다'라고 외친 직후니까 바나나 브륄레를 찾는 것이다.
바나나 위에 설탕을 뿌린 후 토치로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면 풍미가 생겨 난다.
이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함께 곁들여 먹는 거다.
뭐 하려고?
슬픔을 순화시키고 밍밍하게 만들기 위해서.
재료는 간단해서 만들기도 쉽고 좋다.
바나나 1개, 설탕 2큰술, 시나몬파우더 약간 그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컵이면 된다.
여기서 시나몬 파우더(가루)는 녹나무 속(Cinnamomum)의 나무껍질에서 나오는 향신료를 말한다. 계핏가루라 하기도 한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시나몬(Cinnamon)이란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 미얀마 등에서 생산되는 달짝지근한 맛과 계피향을 가진 향신료라고 보면 된다. 뭐, 4천 년 전 이집트 시대부터 향신료로 써왔다나 뭐라나. 암튼, 조미료·향신료·생약 등으로 사용되며 다양한 요리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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