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부쳐 - 김나영
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 번 타오르지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 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치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를 잘못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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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상
이런 시에 '캐공감'하면 안 되는 인생인데
나는 그리 공감이 간다.
이번 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나이 먹으신 분들이 이제는 빨리 저세상으로 가고 싶다며, 그동안 이 세상 살면서 사용해 온 육신의 노쇠함을 한탄하던 말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말인 듯싶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육신이 변하기 시작한다.
얼굴 피부의 윤기가 사라지고 주름이 늘어나며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흰머리로 변색하게 된다. 나뭇잎이 가을날 단풍으로 물들다가 어느 순간 비쩍비쩍 마른 몰골로 급변하는 것처럼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볼품없는 외양으로 변해간다.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녹아내리는지 소실되어 앙상한 가지처럼 힘이 없어지고 심하면 무릎을 굽히고 펴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되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고역이 되기 시작한다. 근육은 결코 하찮은 신체 부위가 아니다. 뼈만 있다고 우리의 형상이 안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뼈만 남은 몸으로는 결코 활발하게 운동성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뼈와 뼈를 이어주는 근육이 튼튼하고 신축력 넘치는 형태로 남아있어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면 외양으로 나타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변모하게 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직접적인 느낌을 포착하게 된다.
나처럼 단순무식한 남자는
몸만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면 배터리 갈아 끼운 로봇처럼 잘도 굴러다닐 것이다. 때론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으로 타고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은 나이를 먹으면 여성 호르몬 분비량이 늘어나기 땜에
오히여 더 감성적으로 된다고 한다. 물론 '감성적'이라는 것과 '우울'은 별개의 개념이다. 여성들은 생리가 끊어지면, 즉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되면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리가 끊어지면 달마다 치르는 지저분한 하체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데 들이는 공력이 없어도 되는 편리한 점이 있지만, 기분이 좋아지면 즉 헝븐하면 애액이 흘러 성생활을 부드럽게 촉진시켜 주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체액 분비의 법칙이 자신과 안면 몰수하고 생까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당연히 매우 당혹하게 될 것이 아닌가. 물론 어떤 이는 의사로부터 여성호르몬 복용의 '처방'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조작(?)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다운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 시기를 극복해 가는가 하는 문제가 참 중요하겠다 싶다.
나는 착한 남자니까,
그런 여성을 잘 감싸주고 슬기롭게 그런 과도기를 극복해나가도록 도움을 주겠지만
실제 부닥쳤을 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잘 수습해가는 게 그리 간단치는 않을 듯싶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아내가 있거나 애인이 있으면 그런 일을 겪으면서 생활의 일부로 헤쳐나가게 될 터이지만 솔로로 살아가니 그와 같이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지극히 일반적인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고 그림 그려서 공유하여야 한다니..
나도 이번 생에 패를 잘못 쓴 게 틀림없는 듯싶다.
다음 생은 분명히 있으리라는 믿음을 밥 먹듯이, 공기를 마시듯이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느닷없는 펜싱 검이 나를 찔러오듯 도전이 들어왔다.
"인간은 죽으면 유기물과 무기물로 분해되어 소멸될 뿐이야.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의 일부를 구성하는 물질로 기능하는 것이고."
물론.. 맞는 말이다. 질량 불변의 법칙도 잘 안다. 지구상의 물질 총량에 조금 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손 치더라도(지구상으로 유입되는 별똥별이나 인공위성이나, 혹은 우주 정거장이나 달나라로 쏘아 올린 로켓 등등의 유입과 유출물의 불일치..) 우주 전체의 물질 총량은 변화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인간과 동물과 모든 식물과 또 광물질까지도, 오로지 자신만의 것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이전의 다른 생명이나 무기물을 형성하던 원소가 재배열되고 재결합되어 지금의 존재로서 살아가게 된 것임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물질계와 궤를 달리하는 영혼이 있다고 믿으니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영혼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까 지구상이나 우주 전체의 질량 불변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라구. 죽음 이후의 삶을 또 살아가는 거지. 그리고 때로는 그 영혼이 또 다른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거란다."
"그걸 어떻게 증명해? 그건 다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인데.."
"물론 나는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나 기술이 없어. 그렇지만 영혼이 있다는 걸 믿어."
"그렇다면 너는 나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거야. 너와 나 사이에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르고 있어. 나는 너와 얘기할 순 있지만 결코 너에게로 다가갈 수 없는 것 같네. 나는 너를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있지만 나는 결코 너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네가 내 몸에 들어오는 걸 허용할 수도 없어. 그러니 한 몸 될 수도 없지."
"그러니? 너는 유물론자로구나."
미지의 여인과 상상으로 대화를 구성해보다가,
생뚱맞게 마지막에 유물론자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 신(神)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 유물론자가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다음 생이 가시권 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Part 2. 음식 한 점(입)
선지 해장국
또,
글이 길어져서
음식 사진 한 장만 올려야겠다.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암튼, 선지 해장국 한 그릇이 먹고 싶어진다.
양곱창과 곁들여서 씹어먹는 선지맛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온다.
그래, 해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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