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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 날 히타이트는 꼬레아 철공소의 체험여행 대상자로 낙점되었다.
'어째서 내가 철공소 체험여행에 선정되었을까?' 히타이트는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 이름...'
그랬다. 그가 가진 이름은 히타이트!
그것은 전설적인 아나톨리아 강국으로 이집트 람세스 2세와 맞짱 떴던 고대 세계의 무시할 수 없는 왕국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냐구? 람세스 2세와 겨뤄서 무승부를 이룰 정도로 강대했던 기저에는 2륜 마차를 이용한 전쟁수행, 이건 이집트 아부심벨 거대석상의 내부 사원에 들어가 보면 벽화에 새겨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기병대와 함께 플러스알파적 요인으로 최초의 철제무기로 무장하였던 숨겨진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철공소에서 나를 점찍은 거였어.'
'그 철공소에 꽤 똑똑한 직원이 하나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게 하여 히타이트가 코레아 수도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 소도시의 체험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숙소로 돌아온 날 저녁의 일이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여느 날의 습관처럼 TV를 틀었는데, 바보상자 안에서 머나먼 남쪽 지경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국대 축구경기가 중계기로 송출되고 있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거인족과 빨간 유니폼의 소인족 간의 경기였다. 국대 경기라 맞짱을 뜬다고는 하지만 거인족과 시합을 벌이는 소인족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나 해설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인족 미얀마는 선배들의 시간대에선 꽤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팀이었다고 한다. 아시아 만천하에 이름 날렸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히타이트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인근의 말레이시아에는 찬드란과 소친온이 웅크리고 있었고, 당시 꼬레아 팀에는 전설의 공격수 차붐이 용을 쓰던 시절이었어.. 그때 아시아의 맹주자리는 오히려 버마가 차지하고 있었지. 꼬레아는 1954년 처음 월컵에 출전해 본 이후 20년 이상 꿈의 무대를 밟지 못했었고, 반대로 빠른 속공과 현란한 패스웍으로 무장한 장작개비 같은 버마팀은 꼬레안의 부러운 눈망울을 뒤로하고 월컵무대에 나가 발바리처럼 온 사방에 족적을 남겼었지...'
어찌 보면, 꼬레아는 모자이크 같은 나라였다. 쥐와 닭의 가면을 뒤집어쓴 속을 알 수 없는 양들이 연거푸 대텅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밑으로는 왁자지껄 개소리 멍멍대는 잡견들이 바글거리는 반면, 산업계와 체육계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거인들이 살고 있었다. 스포츠 분야로 초점을 맞추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꿔 북쪽지방과 혼혈 섬나라 족, 그리고 꼬레안의 일부 지경에 거인이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꼬레아는 거인과 개들과 양이 어울려 살아가는 혼합국이었다. 히타이트의 눈에 비친 꼬레아는 일반 대중을 구성하는 양떼가 자기보다 더 작은 동물인 쥐와 닭에 쥐어 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놀라웠었다. 지도자를 사악한 동물이 아닌 거인족으로 선출하였더라면 막강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지 않았을까? 히타이트는 그런 궁금증을 느끼기도 했다. 거인족에서 나라 대텅을 선출하지 못하는 꼬레아는 무슨 연유가 있었던 것일까? 어떤 요인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나. 그런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은 족속으로 전락된 데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히타이트는 철공소 체험여행에서 돌아와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TV를 시청하며 그런 궁리질을 뭉게구름을 쏘아 올렸다. 그의 눈은 머나먼 남쪽 지경 론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꼬레아의 거인들을 바라보며 반짝였다.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인족 중에서 대권에 도전한 딱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위대한 거인은 너무나 나이를 많이 먹은 연후에 출사표를 내던졌다. 그의 총명한 아들 하나가 대텅선거 유세에 따라다니며 <우리 아부지는 나이가 있어서 대텅 오래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번 우리 아부지를 밀어주세요.>라고 하며 양들에게 호소하였었다. 하지만 양들은 거인보다 쥐를 더 무서워했고, 거인보다 새대가리 닭의 부리가 더 날카롭게 여겨졌다. 그렇게 나라를 좌지우지할 막대한 권력을 쥐와 닭에게 헌납해 버린 양들은 또다시 잡견들의 몰이에 놀라서 우왕좌왕 뛰어다닐 뿐이다. 양은 천성적으로 선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동물인 모양이다. 쥐구멍에는 볕 들 날이 있을지언정 양의 우리에 구원의 방주는 입항할 수 없는 구조였다. 침묵하는 양들... 양들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히타이트는 답답한 가슴으로 양들의 침묵을 응시하였다. 그 사이, 론 그라운드 안에서 Sony Son거인이 미얀마 소인족 골망을 흔드는 추가골을 작열시켰다. 스포츠 판에서 거인족이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내는 동안 일반 세상에서 계속 이어지는 양들의 침묵은 소인족보다 더 안쓰럽기만 했다.
거인족 대 소인족의 축구 경기 시청을 마치고 히타이트는 잠깐 시간을 내어 여행 중에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 여부가 불분명하여 있다, 없다는 논란이 되고 있던 <세균나라>를 다녀오게 된 것이다.
히타이트는 꼬레아가 세균나라의 연결 통로가 될 줄은 꿈에도 예견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별로 추천하지 않았던 꼬레아 여행을 결행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자화자찬하는 한편, 세균나라를 방문할 수 있었던 근거는 순전히 히타이트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믿고 있다. 마치 외계인의 선택을 받아 그들과 1, 2, 3종의 조우를 경험하였다고 주장하는 극소수의 무리처럼.. 따라서 히타이트가 쓰는 이번 여행기는 황당무계한 지어낸 이야기로 사실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그리 취급받았던 것처럼..
연결 통로는 의료인들 틈 속에 존재했었다. 꼬레안이 메르스의 공포에 노출되어 무참히 스러져가고 있던 21세기 초엽의 어느 초여름 날.. 히타이트는 지인의 병문안 차 삼성서울병원(서울삼성병원인가? 헷갈림)을 들렀다가 원숭이 시장과 논쟁을 일으킨 35번 환자와 조우하였던 것이다. 마치 외계의 방문자와 느닷없이 맞닥뜨린 것처럼.. 무리를 이루는 양 한 마리 한 마리가 우주에 떠 있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믿고 있는 히타이트에게 그러한 양떼를 가로질러 신비한 통로가 열어졌음은 매우 지당한 일이기도 하였다. 히타이트는 35번 환자를 통해 우주의 웜홀을 지나가듯 알 수 없는 붉은 시냇물가를 따라 어느 언덕배기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히타이트는 세균나라에도 양들의 세상과 흡사하게 나쁜 세균과 좋은 세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깜놀했다. 어쩌면 머나먼 저 우주 광야에도 악한 외계종과 선한 외계종이 흩뿌려져 있다는 사실의 근거가 될 만한 사실을 발견한 셈이다. 물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처럼 히타이트의 여행기는 시정의 호기심 많은 소수의 무리 사이에 떠돌다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갈 뿐이겠지만..
히타이트는 붉은 시냇물이 줄기를 이루며 퉁탕거리듯 흐르는 어느 굽이진 언덕배기의 잎이 무성한 나무 뒤에 숨어서 위에서 언급한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광경을 목도하였다. 그것은 카데시에서 히타이트와 람세스 2세의 이집트가 세계대전을 벌였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 고대세계의 전쟁에 비유하자면 좋은 세균 나라는 히타이트였고, 나쁜 세균 나라는 이집트였다. 아니.. 그 반대라고 가정하여도 상관없었다. 선악은 양들의 시류와 세태에 따라 왔다리갔다리 하는 정체가 불분명한 개념이었으므로.. 암튼 히타이트의 눈에는 붉은 시냇가 넓은 언저리에서 좋은 세균나라의 돌격대장으로 활발한 에너지를 발휘하는 세균 하나가 바로 포착되었다. 그 세균은 봄날의 산자락에 밝게 불타오르는 목련처럼 존재감이 뚜렷했다. 붉은 시냇물가에 무리를 지어 흐르는 세균들은 그를 가리켜 Cytokine(사이토카인)이라 불렀다. 히타이트는 생소한 이름에 적응하기 어려워 그가 여행 중인 꼬레아의 수컷양 이름을 붙이기로 작정하고 사이토카인을 <돌쇠>라고 고쳐 불렀다. 그리고 유명한 그 세균 돌격대장의 전술 중 하나인 <사이토카인 폭풍>은 <돌쇠바람>으로 바꾸었다. 돌쇠는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이어서 종종 돌쇠바람 신공을 발휘했고, 그 신공 덕분으로 좋은 세균나라는 나쁜 세균의 침공을 물리치곤 했다.
히타이트는 광대한 대지를 흐르는 붉은 시냇물도 똑같은 것이 아니며 어느 것은 퉁탕거리듯 격렬하게 흐르고, 어느 시내는 잔잔한 물결을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돌쇠가 돌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흐름이 격렬한 시냇물가에서만 관찰되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이후 히타이트의 역정을 따라 여행 떠나올 후세를 위하여 히타이트는 그러한 정보를 꼼꼼하게 일지에 기록했다. 그리고 그 돌쇠바람이 때때로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좋은 세균나라에 침공한 나쁜 세균나라의 장수 인플루엔자바이러스(Influenzavirus, 이하 삼돌이)가 과감하게 선빵을 날리며 달려들 적에도 돌쇠는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즉각적으로 튀어나가 맞짱을 뜨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쇠는 젊고 혈기가 왕성하여 삼돌이가 선발대로 나서 이쪽 진영의 대응태세를 확인하려 침투해 들어오는 국지전적인 상황에 과잉대응하여 이른바 돌쇠바람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경우, 불행하게도 붉은 시내의 좋은 나라 세균 일군이 바람에 휩쓸리는 사태가 일어났고, 방어전선의 일부가 유실됨으로써 오히려 삼돌이에게 공격루트를 열어주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돌격대장 돌쇠의 휘하에는 여러 어깨들이 있었는데, 마당쇠(인터페론 감마), 꺽쇠(인터루킨-12), 구두쇠(종양괴사인자 TNF), 잡쇠(림포톡신) 등등.. 그들 중 누가 돌쇠바람의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었다. 암튼, 삼돌이의 도전에 극단적이면서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돌쇠>의 존재는 히타이트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싶었다.
비록 돌쇠가 성급한 대응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리하여 사령관 <대식세포(macrophage)>에게 질타를 당하는 일도 있지만, 좋은 세균나라는 돌쇠와 같은 용맹한 장수가 있어서 나쁜 세균의 침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 면면히 이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여겨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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