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느 날 히타이트는 꼬레아의 낡은 앨범 속에서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았다.
그 사진은 히타이트가 지구별 꼬레아땅으로 온 다음 해 푸른 오월에 벌어진 아주 중요한 사건현장을 담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니 중앙에 당당한 자세로 버티고 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별 두 개 달린 군복차림의 남자가 있다. 오, 그건 바로 닭여왕의 아비 장닭이 아닌가. 장닭 한 마리가 그 주위를 호위하는 왼편의 장끼, 그리고 오른 편의 오골계 한 마리를 아우르며 뻐기듯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해 푸르른 오월하고도 열여섯째 날, 꼬레아를 장악한 장닭은 이후 18년간 군부지도자, 일반 지도자, 막강한 지도자를 거쳐 영도적 지도자가 되어 동강 난 반도 남반부를 쥐락펴락 통치하였다. 그리고 사진 속의 함께한 인물, 우측편의 오골계와 좌측편의 장끼는 나중 구중심처에 기거하는 장닭의 경호실장(or 비서실장)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궤적을 그리게 되었다. 실제 혁명을 설계하고 성공하기까지 산파역할을 다한 칠면조는 이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장닭의 수거명령으로 칠면조 사진이 불태워 없어졌는지도 모르지..
히타이트는 생각해본다. 역사에 가정이란 의미 없는 일이지만 만약 쿠데타 당시 꼬레아의 문화적 토대가 아메리카풍에 가까웠다면 오히려 장닭이 거세당하고 칠면조가 전면에 등장하여 꼬레아를 집어삼켜 먹었을 것이다. 그리 되었으면 20세기 꼬레안은 좀 더 행복했을까? 히타이트는 그런 상념에 잠겨 빛바랜 사진이 인터넷의 숨겨진 공간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풍광을 미간 찌푸리며 살펴보았다.
꼬레아의 순한 양들은 18년이란 기간동안 자유를 억압당했을 뿐만 아니라, 장끼와 오골계같이 미친 조류들이, 없는 사건을 창작하여 만들어낸 죄목에 올가미 씌워져 차가운 감방에서 스러져갔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60년대 코레안 산골에 살았던 양들은 외국의 뉴스에서 전해지는 조각난 퍼즐같은 기사들을 몰래 돌려가며 읽고 분노에 치를 떨었을 뿐, 일부분의 조각으로 온전한 전체 그림을 맞춰보지 못했으므로 조직적인 반격을 꾀할 수 없었다. 모두가 잘 아는 시인 천상병도 장끼나 오골계 같은 미친 조류의 장난질에 인생을 망쳐버린 거 아니었던가. 천 시인은 다행스럽게도 서울대 동문 여성이 거두어줘서 평생을 해로하였지만,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걸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었나? 없었지.
그후 세월이 흐르고 흘러 18년의 장닭시대가 마감되었을 때, 새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열망은 <서울의 봄>이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하지만 결코 봄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대머리닭이 장닭의 후계인양 스스로 나서서 스스로 정권을 잡고 스스로 나라를 통치하였던 것이다. 18년의 장닭시대는 그러므로 온전히 마감된 것이 아니었다. 7년간의 외출 이후, 민주의 시대가 민중의 힘으로 쟁취된 것처럼 모양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술이 개재된 착시현상인 것 마냥 이름뿐인 민정이양, 허울 좋은 민주화의 서막으로 무대의 장막이 걷혔다. 그건 사막에 피어오르는 신기루였을까?
히타이트는 여행가이드를 통해 꼬레안의 역사를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그에 따르면 꼬레안은 근대에 이르러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선택의 기로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였고 그 여파로 섬나라 원숭이족에게 나라를 헌납하는 치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 당시 콘돌국은 원숭이국이 꼬레아를 집어삼키는 데 동의하였다는 풍문이 자자했다.
히타이트는 잘 안다.
풍문은 대개가 진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작금의 꼬레아는 콘돌국에게 전시작전권을 스스로 내어 주어 주권국이면서도 비주권국(=속국)처럼 쪽팔리는 모양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21세기의 동북아시아 상황은 어떠한가? 중원의 흑곰이 세계무대에 등단하여 화려한 쑈를 펼쳐보이고 있는 반면, 그 여파를 최소화시키려는 오 씨 성을 가진 검은 콘돌은 원숭이국과 긴밀한 관계유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반복된 역사의 검은 구름이 꼬레아의 하늘 아래 잔뜩 드리우고 있는 그림이 히타이트의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원숭이 속국으로 36년간(정확하게는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간)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던 꼬레안은 불행하게도 그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채 나라를 건국하였다. 그렇게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죄과를 원숭이국은 어떻게 갚아왔던가? 돈 몇푼 쥐어준 것 외에는 없었지 않은가. 대신, 18년간 장닭시대를 겪어야 했던 것은 바로 꼬레안이 받았던 역사적 심판은 아니던가?
그러나 그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한 꼬레안의 순한 양들은 다시 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닭은 초식동물인가? 유년의 기억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그림에는 분명 지렁이를 잡아먹는 닭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꼬레아의 순한 양들의 눈에는 장닭의 딸년이 초식동물로 보인 모양이었다. 되새김질을 하는 초식동물...
그러나 양들은 모른다. 밤마다 암탉이 모이주머니에 장입해두었던 푸른 목피를 다시 끄집어내어 잘근잘근 되씹으며 색다른 맛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 목피는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18년의 장닭시대를 온몸으로 감내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18년(벽창호 암탉)을 겪어내어야 청산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그래야 36년과 셈셈이 된다는 사실을...
참 이상한 나라는 이상한 방식으로 역사청산을 시도당하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히타이트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원숭이속국에서 해방할 때 꼬레안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콘돌과 북극곰의 장난에 휘말려 나라를 동강내주고 말았다. 작금의 남반부 꼬레아는 유신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으나 그 일을 추진하는데 심히 허덕이는 모습이다. 자발적으로 청산해낼 자질이 안 보인다. 힘이 딸려 보인다. 정상배들만 바글거리고 진정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가가 없으니 어찌 제대로 된 청산을 꿈꿀 수 있을는지...
'South Korea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2 - 야간 순찰 체험 (3) | 2025.03.23 |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1 - 프리미어 12 (2)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9 - 핵을 둘러싼 난리 (7)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8 - 강호접전 (1)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7 - 여름날의 추억 (3) | 2025.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