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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는 지난주 색다른 체험을 했다.
여행지에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색다른 경험이었다.
꼬레아는 원숭이국과 견원지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그렇다고 꼬레안이 <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언제나 경기외적인 혹은 실력외적인 요소가 작용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그 경기외적인 요인이란 과거 꼬레아국을 점령했던 원숭이에게만은 결코 지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본능적 오기가 꼬레안 대표선수들에게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축구경기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었다. 본능적 오기가 발동되는 기제는 과거의 식민지 역사 위에 덧칠 입혀지듯 축구경기가 가지는 시대적 화두가 점철되어 있는 데 있었다.
축구란 직접적으로 몸을 부딪히며 하는 경기인데다가 11명이라는 집단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이 국가를 대표해서 대리전쟁을 치른다는 형이하학적 철학에 자연스레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도록 한 스포츠 종목이었다. 몸의 테크닉과 머리의 작전이 필요할 뿐 아니라 11명 대표선수 개개인의 의지와 투지가 경기결과에 가장 강하게 반영되는 축구는 그러므로 국가 간의 전쟁이 사라진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를 살아가는 행성인들에게 전쟁의 대체물로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으며, 특히 이유 없이 싸우고 힘자랑을 해보는 수놈들에게 2세기에 걸쳐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독차지해 온 스포츠라는 근간을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꼬레아와 원숭이국은 어느새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양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때 낙타족들이 아시아의 왕관을 쓰고자 기승을 부린 적이 있었지만 지금 걔네들은 알라신 추종놀이에 정신 팔려 경제와 문화 연예와 스포츠부문에서 뒷걸음질을 밥먹듯이 해오고 있는 상황을 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기현상은 21세기를 연구하는 후대의 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일감을 제공할 것이 틀림없었다. 따라서 작금에 와서 아시아 축구의 자웅을 겨루는데 반도국 꼬레아와 섬나라 원숭이국은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공인 국가로 위상이 격상되어 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운동경기, 야구가 있었다.
축구가 투지의 개입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종목이라면, 단체경기 중에서 야구는 가장 머리싸움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종목이었다. 머리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일종의 잔머리 굴리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경기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섬나라 원숭이족이 야구를 서양으로부터 가장 빨리 도입하였거니와 본질적으로 잔머리와 뒷통수치기에 능한 기질적 특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야구에 관한 한 원숭이국이 꼬레아의 한 수 위에 있다는 사실을 꼬레아서조차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등의 국가 대항 경기에서 꼬레아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여 경기를 점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과거의 사례를 머리에 주입한 후 히타이트는 프리미어 12라고 이름 붙여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원숭이 국과 경기를 치르는 꼬레안을 지켜보게 되었다.
히타이트는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야구경기도 아는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믿고 경기관전에 들어갔다. 개막전에서 완패를 당한 경험이 있는 꼬레아는 복수혈전의 일환으로 원숭이국과 준결승전을 준비하였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경기를 지켜보니 꼬레안은 원숭이국의 강속구투수 오타니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에이 정말 무기력한 경기력이네..'
히타이트는 여행가의 입장을 망각한 채 꼬레안 팀에 감정이입을 시도하였다가 경기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런닝머신 위에서 경기를 주시하던 히타이트는 결국 채널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오타니에게 노히트노런에 가깝게 농락당하는 꼬레안 타자들의 무기력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굴욕으로 비치고 있었다.
사소한 일상에 파묻혀 휴식을 취하던 히타이트,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날 밤 늦은 시각 TV뉴스를 통해 히타이트는 놀라운 결과를 목격하였다. 9회 초 대반격에 나선 꼬레아 국대가 4대 3의 대역전승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알고 보니 꼬레안 타자들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하여 강한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 무너져 내리던 경기를 뒤집는 쾌거를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강속구 투수를 공략하지 못한 채 원숭이국감독의 잔꾀를 파고들어 승리를 낚아챈 기묘한 이력이 숨겨져 있었다. TV화면에서는 그런 속사정을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역어내고 있었다. 반도의 꼬레안은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라고 승리를 자축하는 감정의 축포를 쏘아 올리고, 섬 원숭이국의 일반원숭이들은 대표팀 감독을 비난하는 언어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히타이트는 생각했다.
애초에 계획에 의해 출발한 것이 아니었던 기묘한 꼬레아 여행은
이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히타이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그해(2015년) 코레아 야구국대는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에 등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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