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양들은 침묵하고 있다.
양들은 자기들이 일꾼으로 뽑아 놓은 개들과, 같은 초식동물이라 착각하여 세웠던 암탉이, 온 천지의 재물을 자기들 것인 양 취하고 먹고 마시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황금 감투를 놓고 서로 차지하겠노라 싸움질 벌이고 있는 풍광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양들은 순하여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런 속성을 잘 아는 개들은 양의 털을 깎아서 취하고 양들 모르게 특정 양을 도살하여 고기를 취하는 등 야비하고 잔인하게 뱃속 채우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히타이트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과거 멸치 거사와 펭귄 신사가 민추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경쟁자이면서도 민주화의 열망 밑에 하나로 뭉쳐 결국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였을 때, 양들은 다시는 군부정권의 출범을 반복해나가지 않기를 열망했었지. 하지만 양들의 순수한 열망과 달리, 아니 순진한 여망에 불과했던지 두 신사는 단일화에 실패하여 결국 장닭의 꼬붕 대머리 닭의 친구로 새롭게 떠오른 <보통닭>에게 정권을 헌납해버렸지 않은가.
그때 두 민추협 신사는 히타이트를 포함한 대딩 양들이 얼마나 큰 절망을 하였는지 알까?
그런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꼬레아의 남쪽 지경에서 지금 유신 암탉의 발광을 중단시키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가할 정의로운 지도자 선출이 강한 열망이 되어 익어가고 있다. 양들은 야권 재집결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건만.. 호남 땅에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배 채우려는 뻐꾸기 문충과 자기 잇속에 밝은(원래, 그 대학 출신들은 십중팔구 철저하게 이기적이긴 하지..) 안붕어가 서로 자기가 대권주자가 되어야겠다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양들은 그 더러운 흙탕물을 뒤집어쓸까 염려되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런 형국이 벌써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히타이트는 야권의 개들도 참 문제가 많다 싶었다. 문뻐꾸기와 안붕어의 대접전을 가리켜 <양초의 난>이라 힐난하면서도 정작 순한 양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는 나 몰라라 딴청을 부리는 모습이 빤히 보이고 있는 것이다. 히타이트는 과거 양김이 국민의 여망을 뒤로하고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부리는 바람에 민주화의 여정이 7년이나 지체되었던 일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양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다. 진정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혀 수긍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닭대가리보다 못한 양대가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독재자의 딸 닭그네를 내세우고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대텅으로 뽑았겠는가..
겨울로 접어들면서 꼬레아는 총선 정국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위대한 민주화 투사 중 하나였던 멸치 거사의 장례식 이전부터 이미 꼬레아 들판은 차기 대선출마를 노리는 허접한 새들의 싸움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와중에 맞이한 멸치 거사의 장례식은 보수 조류들의 적자 다툼으로 희화화되어버리고 말았다. 보기 흉한 모습이었는데 장례가 끝난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예의의 냄비근성이 발휘되어 언제 멸치 거사의 장례가 있었느냐고 시치미 떼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야권에서는 문뻐꾸기와 안붕어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는 모습을 노정하고 있는데, 기실은 승부를 붙는 모양새가 아니라 결별의 명분축적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웃사이더인 히타이트의 눈으로 볼 때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친부엉 세력이 언제 다수파가 되었지? 히타이트는 야권이 배출한 두 명의 대텅 펭귄 신사와 부엉 아저씨의 잔영이 드리워져 있는 왼쪽 지형을 그려보며 깜놀했다. 지난 대선 직전만 해도 친부엉계는 재야에 숨어서 목숨을 겨우 연명해 오던 폐족이었지 않은가? 그런 친부엉족이 세를 규합하여 뻐꾸기를 대선 후보로 옹립하면서 어느새 야금야금 제1야당의 실권을 장악해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엉 아저씨의 절친이라고 해도 문뻐꾸기는 절대 리더가 될 자질을 가진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사라고 치켜세워지는 그가 끈질기게 감투를 눌러쓰고 버티기 신공을 발휘하고 나서니 모두들 아연실색, 아니 저 인간에게 저런 뻔뻔함이 있었나 하는 표정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뻐꾸기가 버티기 신공을 발휘한다고 해도 그렇지 야권은 원래 장닭에 의해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호남세력을 본거지로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호남세력의 명망 있는 인재들 모두가 비주류로 전락하여 지리멸렬해 버린 모양새다. 하지만 제삼자인 히타이트가 보아도 야권의 현 수장 뻐꾸기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새대가리여서 친부엉족들이 왜 저런 인물을 내세워 이리 찌질한 당운영을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꼬레아 산골에서는 뻐꾸기를 지지하는 양들을 친부엉이족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맞는 표현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히타이트의 기억에 남아있는 부엉 아저씨는 문 뻐꾸기처럼 답답한 새대가리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부엉 아저씨는 솔직하고 정면돌파하기를 좋아하며 승부를 벌여야 할 땐 과감하게 승부수도 던질 줄 아는 멋진 <새>였었다. 뻐꾸기 같은 찌질이는 부엉 아저씨 발톱의 때도 따라갈 수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히타이트는 분명히 자신의 여행 노트에 부엉 아저씨에 대한 인상을 그렇게 기록해 두었었다. 진똥개나 조똥개나 참말로 한심한 대학교수들이 뻐꾸기를 치켜세우고 꼬드기기에 열중인데 그런 초겨울 풍경이 히타이트의 눈에는 너무나 을씨년스럽게 보이기만 하였다. 그렇다고 히타이트가 안붕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안붕어는 <새>가 될 수 없는 한낱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고기로 대텅자리에 오르려면 적어도 멸치 거사만큼의 강단은 있어야지...
히타이트는 생각했다. 꼬레아 산골에서 양들을 위해 정말 필요한 존재는 <유촉새>가 아닐까 여겨졌다. 비록 그에게 카리스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참신한 뇌섹남의 장점을 갖추고 있잖은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행객 히타이트의 생각일 뿐, 꼬레아 산골의 앞날은 꼬레아 비탈에서 서식하는 양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던가.. 그가 참모로서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리더가 되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 있는 거고..
신족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지. 예수 그리스도는 리더였어. 그는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바치라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였잖아. 세례자 요한은 결코 빛이 될 수 없는 선지자였고. 그처럼 타고난 DNA가 다르면 어찌할 수 없는 게지. 그러니 한 나라의 역사에 위대한 지도자가 매번 탄생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주)
양초의 난 : 두 초선의원이 일으키는 당권분쟁
멸치 거사=김영삼
부엉 아저씨=노무현
펭귄 신사=김대중
친부엉=친노
문뻐꾸기=문재인
안붕어=안철수
장닭=박정희
진똥개=진중권
조똥개=조국
유촉새=유시민
'South Korea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0 - 그해 오월 (1) | 2025.03.23 |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9 - 핵을 둘러싼 난리 (7)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7 - 여름날의 추억 (3)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6 - 구중심처 회의 풍경 (3) | 2025.03.23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5 - 월담 현상에 대한 고찰 (2) | 2025.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