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Korea Story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7 - 여름날의 추억

hittite23 2025. 3. 2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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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 作 / Poppy Field, 1907

 

7

 

 

꼬레아 반도는 7월이면 장마가 온다. 8월부터 9월 사이에는 태풍이 올라온다. 그렇게 여름을 식혀주고, 대지에 물을 공급하여 초목이 성장하도록 하는 반면에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바다를 유영하지도 못하여 오로지 땅에 붙어서 사는 종족들은 장마가 오거나 태풍이 불 때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바람과 비의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흙담과 산사태와 뿌리 뽑힌 나무들에 의해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장마와 태풍은 한편으론 이롭고, 한편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해로운 힘으로 받아들인다.

 

장마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흐린 날과 습기와 빗물을 우산과 장화로 버텨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태풍이라는 놈은 생명을 빼앗아가거나 소중하게 쌓아 올린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해마다 태풍은 불어오고 그 놈들에게 당하는 이야기는 봄이 오면 새싹이 돋는 것처럼 새롭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렇게 반복되는 대자연의 용틀임 앞에서 지구행성의 지배자라 자처하는 종족들이 자신들의 자부심과 어울리지 않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광경은 역시 해마다 반복하여 구경하게 된다.

 

언제가 북쪽지방에 살고있는 백곰들이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하늘에 약품을 뿌려서 비를 내리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였다고 자랑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장마나 태풍과 반대로 가뭄이 계속되어도 인간이란 종족은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몰려오는 태풍을 소멸시키거나 하다못해 행로라도 바꾸는 기술을 개발한 종족은 지구행성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행성의 경찰국가라 자칭하는 아메리카 양키족마저 북미 태풍(그쪽에서는 허리케인이라 부름)이 몰려올 때면 미리 도망가라고 방송을 때리고, 그 방송을 들은 양키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야만 한다. 그렇게 큰 바람의 피해를 입은 어느 해는 경제지수마저 흔들어 지구행성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었다.

 

그런데 올해 꼬레아의 허리에는 장마의 소문만 무성할 뿐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다. 200년 전만 하더라도 문명화하지 못한 꼬레아 선조들은 가뭄이 지속되면 나라의 통치자인 왕이 기우제를 지내고 자신의 덕이 부족해서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참회하기까지 하였지만, 닭여왕은 아무리 가뭄이 기승을 부린다 한들 그런 퍼포먼스나 립 서비스를 결코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꼬레아는 문제아이자 행성의 골칫거리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오씨 성을 가진 양키족의 흑왕은 섬나라 원숭이와 반도의 양을 묶어서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는 대륙의 흑곰을 물리칠 공동전선을 만들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과거 35년간 섬나라 원숭이의 속국이 된 바 있었던 반도의 양들이 사사건건 섬나라 원숭이와 좋게 지내기는커녕 걸핏하면 싸움을 걸기 때문이었다. 10년 전 노부엉이 반도국의 수장으로 있을 땐 정말 대책 없을 정도로 막 나가는 바람에 어찌하지 못하여 끌려다니는 형국에 이름마저 부실했던 전임자의 경험을 흑왕은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 후에 등장한 2메가 쥐왕과 닭여왕은 노부엉에 비하면 구슬리고 어르면서 잘 관리되어 양키족의 욕구 충족을 관철하기에 딱이었다. 섬나라 원숭이족만 끼어들지 않는다면 속 편하게 다루고 그나마 흡족해할 수 있는 면이 없지 않았다.

 

각설하고 꼬레아는 나라가 조그마하지만 남북으로 길이는 길어서 중허리 지방은 마른장마로 농사에 어려움을 겪을 망정, 발바닥에 해당하는 제주섬엔 걸핏하면 물 폭탄이 투하되고 또 투하되었다. 계절에 따라 한라산 언저리엔 눈이며 비며 언제나 기후와의 전쟁이 일상다반사처럼 되풀이되어 발발하는 모습이라니.

 

비..

그것은 그냥 구경하는 입장에 있는 존재들에겐 운치있고 추억을 돋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종자였다. 한때 D철공소 체험여행의 일과 후 만난 적이 있었던, 농사를 짓지 않는 어떤 암양은 비를 매양 좋아라 했었지. 그러나 히타이트는 태양의 자손에 가까운지라 비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장마 소식이 기상 캐스터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 여행길이 진창이 되어버리는 걸 머리가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반대로 기상캐스터가 이제부터 가뭄이다하면 오히려 여름철 기후로 인하여 여행길이 훼손되는 불상사는 발생치 않으리니 그저 다행이다 싶었다.

 

어제 휴식 중 저 머나먼 낙타 나라 이웃의 스핑크스 나라로부터 유명 영화배우가 치매에 걸려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었다. 스핑크스의 나라.. 한번 가보시게나. 코레아 산천과 다른 신박한 매력이 차고 넘치는 지경이거든. 그런데 그 지경에서 세상을 하직한 남자는 히타이트가 익히 기억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머언 먼 기억의 건너편, 아스라한 추억의 땅 성동구 하고도 금호동 길목에서 어느 3류 극장의 좌석에 앉아 두 번 연달아 보았던 길고도 긴 영화. 히타이트가 지구행성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날에 꽤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닥터지바고>의 주연배우가 바로 오마 샤리프였다.

 

라라의 테마가 울려 퍼지는 스크린에서 깊은 우수에 잠긴 눈으로 북국의 설원을 응시하던 멋들어진 배우. 콧수염을 흩날리며 북구의 하연 설워을 누비던 그도 어느덧 허물어져 볼품없는 기색으로 행려병자처럼 쓸쓸히 사라졌다는 거다. 그것도 사막의 땅, 스핑크스의 나라에서 그 자신만이 이어오던 지구행성의 여행을 마무리하였다는 뉴스였다. 히타이트는 진심으로 그 남자의 영면과 명복을 빌었다.

 

아랍의 봄이 올 것 같았던 2013년,

히타이트는 마음으로나마 재스민 혁명이 기치를 올리던 지경에 조그마한 힘을 보탠 기억이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마음으로만 성원을 보냈던 히타이트는 진정으로 그 지경에서 세상을 하직한 그의 명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품었다. 참 웃기는 이유였다. 아니 아랍의 봄이며 재스민 혁명이며 하는 것과 오마 샤리프란 백인 남자가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러게 말이다.

히타이트 역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치매의 조심이 일어나는 징조인가?

아님 노부엉 아자씨처럼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지는 저 어둡고 검은 사위를 훠얼훨 날아

건너편 지경으로 떠날 날이 가까워짐인가.

 

지구행성이 언제까지 우주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해있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자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장마가 진주해 오고 태풍이 쳐들어와도 풀잎은 결코 뿌리 뽑히지 않았던 것처럼, 옆으로 눕히고 짓밟히기는 했을지언정 뿌리만은 지켜내었던 풀의 역사를 기억해 내고 뇌리에 떠올려 낸 히타이트. 그는 서울의 봄을 온몸으로 겪으며 코레아 여행의 독한 맛을 보았던 처지라서 괜스레 아랍지경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의 편린이 오마 샤리프의 사망을 매개로 하여 되살아난 것이었다. 생뚱맞게도 말이다.

 

그리하여 민주화를 억압했던 장닭의 치하를 다시 떠올린다. 극동의 닭정권으로부터 성동구 금호동 컴컴한 삼류극장으로 이동하고 다시 오마 샤리프에 감정이입한 다음, 재스민 혁명에 이르기까지 한 다리, 두 다리, 세 다리 건너 서로 다른 이야기를 끼워 맞추고 오버랩시키며 스스로 자진하여 다짐하는 마음이 되어 고양되는 정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아무리 장마가 진주해 오더라도, 무섭고 세찬 태풍이 처올라와서 세상과 사위를 휘젓고 지나간다 해도, 다시 해가 바뀌면 새로운 잎을 틔우고 세상은 아름다운 초록으로 미만 해오곤 했으니, 그 아름다운 신초록의 풍경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Poppy Field, 1907 [det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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