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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 28

통찰

​ 약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마음이 수수로웠는지 딸의 알바인생의 전말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동안 딸은 동네의 편의점에서 알바자리를 구하려 면접일자를 받아 놓은 상태에서 인천공항 입주 편의점에 사표를 냈다.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다음 사표 내도록 누누이 조언을 주었건만 둘째는 내가 그렇게 하는 걸 승인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내 기억엔 승인해 준 적이 없는데 둘째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잠정적인 승인의 처사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둘째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내가 살면서 후회한 것 중 하나가 있다.자식들이 미성년자일 때 주택청약저축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 필요성과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냥 깜빡하고 지나가버린 것..

with Daughter 2025.03.31

삶의 장면 1,2,3

장면 1​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딸 : 요즘 스마트 라식이란 게 생겼다는데딸 : 부작용을 최소화한 거래여나 : 일본의 안과 의사는 라식 안 하던데.. 완전히 안전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딸 : 요즘 새로운 기계가 나와서딸 : 좀 좋아진 거 같던데 자세히 보진 않았어요딸 : 그때랑은 다르니까나 : 집에서 얘기하자​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딸 : 근데 비싸여딸 : 250 정도래여딸 : 돈 모아서 할까 말까 고민되는데 사치일까요나 : 안경 쓴 게 멋을 내는 한 방법이 되기도 하는데 꼭 라식할 필요가 있겠니?나 : 가능성이 낮다 해도 의료사고의 위험성도 있고..딸 : 도수가 없으면 괜찮지만 도수 있어서 눈이 작아 보여요 글고 렌즈도딸 : 기스 많이 나서 몇 년에 한 번씩 바꿔야 되는데딸 :..

with Daughter 2025.03.29

잊절과 핼러윈 사이에서 길잃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마트에서 둘째가 고른 장본 물품들을 꺼내 정돈했다.나와 둘째 두 사람을 놓고 본다면, 뭐 재삼자이거나 아님 위에 계신 그분이 그리한다면, 비슷한 성향이니 좀 다른 성향을 드러낸다느니 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정리 정돈하는 따로 있다는 식으로..하지만 솔까말 정돈이라는 게 뭐 별거 있나. 주섬주섬 챙겨서 냉장고에 칸칸이 집어넣으면 땡이다. 냉동고에 들어갈 건? 없는 것 같았다. 나홀로 노는 것처럼 그러는 사이, 둘째는 먼저 플라스틱 계란 꾸러미에서 알을 한 개 꺼내 기름으로 튀기는가 싶더니 매운맛 쇠고기 카레덮밥에 계란 프라이를 얹어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그리고 사온 홍시 한 알을 꺼내 먹고 다시 같이 사 온 바나나 한 알을 꺼내 먹는다. 평..

with Daughter 2025.03.29

마트 테러

어젯밤 자는 데 문자가 왔다. '아파서 내일 쉬어요' 다 아는 얘기지만 단문의 문자는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화면에 전체 내용이 고스란히 뜬다.열어보지 않아도 핵심과 전말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읽은 티를 내지 않았으므로 별도의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읽씹 했다는 걸 상대방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방에서 자고 있는 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녀석이 곳곳에 널부려놓은 휴지와 비닐봉지들을 분리수거통에 집어넣고 검은콩 건빵 1 봉지와 아메리카노 커피 한 병을 꺼내 먹었다. 티브를 켜니 진부한 뉴스들이 진부한 앵커들의 입을 통하여 내 생활공간으로 들어오더니 진부한 나를 어지럽힌다. 검정콩 건빵을 씹다가 궁리질한다. 검정콩 건빵이라 하지만 정말 콩이 함유된 비율은 극히 일부일 텐데 나는 광고하는..

with Daughter 2025.03.29

매일 부활하는 남자

​ 어제 출근동행으로 인천공항 2청사까지 가서 둘째를 마중보내고 난 후 나는 공항에서 바로 귀가한 것은 아니었다.​ 나 홀로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서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그곳에서 아마도 여행 떠나는 승객들에게 초점을 맞춰 선별된 작가의 책들, 출판사에서 기획단계를 거치며 구매력을 짜내기 위해 기발하게 치장된 책표지를 구경하며, 또 습관처럼 여행 서적 한 권을 꺼내보았다.  정여울이라는 여자가 암스테르담을 트랜싯 하며 지나치기만 하다가 기차를 타고 들어가서 고흐 미술관을 찬찬히 둘러 본 그림 감상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한국에서 미술하면 고흐가 아니던가. 그 책표지를 보면서 고흐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서 나는 이제 고흐 좋아한다는 얘기를 함부로 입 밖에 내놓지 말고 속으로 되..

with Daughter 2025.03.29

출근 동행

​ 12시가 넘어 둘째가 출근 차비를 한다. 나는 급히 계획했던 헬스장 가는 걸 포기하고 둘째를 따라나서며 변명했다. "아, 오랜만에 인천공항 구경 좀 하려고 그래.." 둘째는 흔쾌히 나의 동행을 허락한다.​ 둘째가 외출하려 폼 잡으니 그녀의 식구인 냥이가 어느새 조르르 달려 나와 배웅하듯 쪼그리고 앉는다.물론 그건 냥의 속내를 헤아려서 하는 말이다. 내가 만두(냥)의 소리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나의 감정으로 반려캣의 심리를 해독하는 것이다. 아무리 냥이의 언어를 모른다 해도 그 표정과 그 몸짓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냥이와 동거 생활이 길어지니 오히려 그 행동거지가 냥이의 것이 아니라 강쥐의 것처럼 보여 의아하게 여겼던 점은 있었지만.. 그러나 겪어보니 알게 되는 사실 하나는 동물이란 가..

with Daughter 2025.03.29

1 순위자와 2 순위자

가을인데 그곳에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사실은 그곳에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똥 싸고 밑을 안 닦은 것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였을 때 엄습해 오는 기분 이상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큰 딸이나 둘째나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무런 싸인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꼭 그 아이들의 요청이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1 순위자와 2 순위자의 관계.이런 이상한 관계가 나의 딸들과 나 사이에 가로 놓여있다는 사실을 언제 인지하게 되었지? 뭐 과정은 차치하고 결론만 놓고 말하면 나는 2 순위자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나는 2 순위자이기 때문에 나의 의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혹여 나의 의사가 있다 해도 1 순..

with Daughter 2025.03.29

뚱딴지 같은 일기

어제 아침 둘째는 휴일인데 출근한다면서 말했다."2만 원만 빌려주세요. 휴일근무자 대근해주면 밤에 일비 입금될 거예요." 나는 순간적으로 '욱' 하는 송충이가 내면의 감방을 탈출하여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느꼈다. 서대경 시인은 술이나 마시면 내면의 원숭이가 튀어나온다 했는데 나는 성질머리가 더러워지면 비슷한 현상을 일어난다. 순간적인 변신기제를 제어하는 노하우가 아직까지 신체에 장착되지 못한 것이다.​"너 월급 120만 원 수령한 게 언제라고 벌써 돈 빌려달라는 거냐?""120 중에서 교통비 13 나가고 저금하려고 아버지에게 30 이체시켰잖아요.""그래도 그렇지. 그거 제외하면 7,80이 남는데 그걸 열흘 만에 다 닦아 썼다는 게 말이 되는 얘기냐구" 나는 몸은 식탁 언저리에 세워놓고 둘째와 대치하도..

with Daughter 2025.03.28

나는 한 마리 콘도르

주말이 되어 서울집에 올라온 나.둘째는 다행스럽게도 오늘 출근하였다. 오후 3시에 시작해서 밤 10시에 끝나는 편의점 알바. 인천공항 내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해외 나갈 일이 없는 사람은 인천공항에 가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멀리서나마 둘째가 일하는 모습 훔쳐보기 하는 걸 하지 않았다. 신파 드라마 보면 배우 최수종이는 그런 거 잘하던데..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방식은 매우 소극적이다.​ 아침에 "오늘 출근할 거니" 물으니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 얘기 들어보고요"라고 말했던 둘째. 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나만의 꿍꿍이속 작업을 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일어나 냉동고에 쟁여놓은 닭 가슴살 한 봉지를 꺼내 전자레인지로 데워 식사를 하는가 싶더니 또 어느새..

with Daughter 2025.03.28

집안 내력

우리 가족은 명절이면 돌아가면서 집들이 같은 모임을 가진다. 추석과 설날, 그리고 어버이날이나 엄니 생신이 그 집들이의 대상이 된다. 장소는 엄니가 정하시면 그 명에 맞추어 우리 형제는 돌아가면서 집들이를 하는 셈이다. 형제는 2남 2녀다. 60년대 출생자들인 우리 형제는 그 시절 평균 기준에 맞는 가족수로 형제를 구성했던 것이다. 알고 계시는지. 베이비 부머 세대인 셈인데 그때 제일 좋은 자녀숫자가 바로 2남 2녀였다. 그 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딸 구별 말고 등등 해괴한 출산구호를 등장시키면서 인구억제정책을 펴왔던 세상을 나와 나의 형제들은 살았다. 이제는? 다 잘알고 있잖은가. 아기를 낳으면 국가에 애국하는 세상이 되었고, 각 지자체마다 출산 장려금이니 무슨 장려금이니 하면서 출산유도 정책..

with Daughter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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