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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56

자연스러운 일​ - 임유영

자연스러운 일 ​- 임유영 술을 끊은 지 여든 날쯤 지났나, 고등학교 동창인 Q와 연락이 닿았다. Q는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미 첫째는 여섯살이고 한 달 전 둘째를 낳았다고 했다. Q의 목소리로 그 소식을 직접 듣자니 가슴속이 따뜻하고 커다란 젤리로 출렁이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온화하고 명랑했다. Q는 우리가 대학생 때 함께 종로에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 결혼과 출산처럼 큰일을 서로에게 알리지 않고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Q는 휴식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으니 옛친구들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내 이름을 검색해보다가 내가 시인이 된 것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Q와 함께 있으면 그의 다정한 기운에 안심이 되었다. 나..

제2장 Y시에서의 한철 / 4 - Love Car

사유해 보자. 소중했던 우리 사랑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만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사랑은 케바케(case by case) 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지금 지구별 여행에서 겪었던 유일무이한 사랑, 'Drive and Stop Love'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 즐기는 방식은 21세기에 생겨난 것이다. 사실 제한된 공간에서 나누는 수다와 스킨십을 가리켜 고급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이게 된 사랑 방정식이니까. 나라는 유교문화의 잔재를 완전 청산하지 못하였으므로, 인기 가수나 배우들이 연애하려면 참 힘든 지경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South Korea Story 2025.04.19

제2장 Y시에서의 한철 / 3 - 리씽에서 만남을...

3 S시에서의 안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K국 인기가수 조영남이 출연했던 체험 삶의 현장과 같은 여행지를 추천받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제안을 응하였다. OK 사인을 보내고 난 후 나는 정착촌 S시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D시 H철공소를 주말마다 오가는 현장 숙식 체험학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풍광이라고 하여도 싫증을 느낄 때가 온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양고기 스테이크라 하더라도 하루 이틀이지 열흘이 지나면서부터는 소스와 향신료를 어떻게 조합하여 식탁에 대령시켜도 역하고 노릿한 냄새가 비강과 목구멍을 진동시키는 듯 공격해 오게 된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비양심적인 한국인이 운영하는 값비싼 코리안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

South Korea Story 2025.04.19

제2장 Y시에서의 한철 / 2 - S시에 대한 고백서

2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정신줄을 잃은 것일까? 히타이트는 고장 난 시계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얘기인즉슨, 히타이트는 어떤 경로로 이상한 나라 K에 당도하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웜홀을 통과하고 나서 빛의 속도보다 몇백 배 더 빠르게, 아니 정신세계의 흐름을 뛰어넘는 속도로 K 국에 입국하였었나? 가물거리는 기억의 언저리에 람시스가 뭔가 하는 이름 석자가 떠올랐다가 반딧불이처럼 사라졌다. 스스로가 '별'인 줄 알았다는 그 개똥벌레처럼 히타이트의 정신세계도 지금 섬망이 망실된 것인지도 모르지. 아니, 카프카의 분신 그레고르(Gregor)가 방에서 자고 일어나니 갑충(딱정벌레)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어느 날 일어나니 이상한 나라 K에 들어와 있었고, 그 나라 옆구리에 위치한 ..

South Korea Story 2025.04.19

제2장 Y시에서의 한철 / 1 - 매너리즘에 빠진 이상한 나라의 여정

제2장 Y시에서의 한철 1 당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아니면 마크 트웨인이 지어낸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는가? 좋다. 그것도 아니라면 걸리버와 함께 거인국과 소인국과 외눈이 나라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이 이야기를 읽을 자격을 갖춘 것이다. 아니, 아니. 이젠 그런 거 다 안 읽어봤어도 상관없다. 지금 당신은 매드맨 트럼프와 또라이 머스크가 브로맨스의 연장선에서 벌이고 있는 미친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알던 그 세상인가 심히 의심스러워하지 않는가. 트럼프와 머스크의 난리 브루스가 아니더라도 윤가놈과 이가놈이 개지랄을 떨었던 지난 6개월의 여정을 우리는 원치 않게 함께 ..

South Korea Story 2025.04.10

신과 함께, 딸과 함께

​신과 함께​ 한때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짝짓기 시점과 인격 성숙 간의 언밸런스가 존재함을 아셨는지 아니면 모르고 지나쳤는지 암튼 그런 간극을 방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가? 내가 판단하기로 인간 남성이 인간 여성을 선택하는데 너무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으로 결정하는 오류는 그런 불일치 혹은 언밸런스에서 파생되는 것인데 그것을 방치한 이유에 대해 우리 인간 창조주인 신의 '능력 부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하지만 내가 누군가. 기독교 세례교인이 아니던가. 나는 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마음에서 그것은 아마도 너무 완벽한 잣대로 짝을 고르다 보면 종족보존의 과업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조처한 거라고 이성(감정이 아닌) 이입해줬다. 그런 이유로 신께서 인..

with Daughter 2025.04.09

봄등산

"아침에 등산 가자더니 안 갈 거니?"침대에 누워있는 둘째에게 물었더니 "늦게 잤어요. 못 갈 수도 있어요."라고 한다.​나는 둘째가 안 가겠다면 안 간다. 일단 외출을 포기하고 난 다음, 나는 TV를 틀어 주말에 송출되는 영화가 뭐 있는지 검색했다. 분명 어제 오전에 내가 검색했던가 프로그램을 훑어보았던 행위들인데 오늘 그걸 기억창고에서 끄집어내어 일상의 스케줄에 늘어놓으려 하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룬~ 이거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님? 한국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라던데. 문찌질 대텅은 집안 내력에 치매환자가 있는지 '치매', '치매' 하며 '정부의 지원' 운운 해대던데, 치매 내력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건 젊어서 폭음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

with Daughter 2025.04.06

나의 무지는 푸르다 - 서대경

나의 무지는 푸르다 - 서대경 나는 결국 이 길 위로 돌아와 있다, 이 길은 무엇인가, 나는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본다, 아무도 없다, 오직 싸늘한 푸른빛에 잠긴 텅 빈 길만이, 저 너머로 끝없이 뻗어가는 소름끼치는 푸름만이 내 앞에 있다, 무엇이 나를 이 길 위로 옮겨다 놓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아버지의 매질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열세 명의 아버지의 매질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일년에 한두 번, 그러다가 한달에 한두 번, 언제부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이 길 위로 돌아와 있다,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 아니 일년의 대부분, 그런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이제 서서히 머리가 벗겨지는 나이가 되었다, 집에서 아내가 집어주는 사과 조각..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 · 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겨울밤 하늘로 올라가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회비를 만 원씩 걷고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치..

사유의 유희 3선(選)

1불가사의(不可思議)공중파 방송의 한 군데서 송출하는 을 본방사수하고 하릴없이 빈둥거렸다. 그다음 먹잇감으로 EBS 일요 한국 영화 을 예약했는데 왜 그런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둘째는 컨디션이 안 좋은가? 세탁기에 빨랫감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 돌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나도 왜 그런지 상쾌한 기분이 아닌 느낌이 일렁거리길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촉촉한 물은 마음까지 온화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인간의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더니 인간은 정말 water친화적인 존재인 모양이다. 알콜친화적인 사람도 있긴 하지만 나는 water친화적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기분 전환된 나는 내친김에 설거지를 하고 이어서 세탁기에 중성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넣고 세탁을 명령한 후 거실로 돌아왔다. 이 벌써 ..

with Daughter 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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