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Daughter

1 순위자와 2 순위자

hittite23 2025. 3.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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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de Mademoiselle Demarsy, 1882 / Auguste Renoir 作



 

 

 


가을인데 그곳에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그곳에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똥 싸고 밑을 안 닦은 것처럼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였을 때 엄습해 오는 기분 이상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큰 딸이나 둘째나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무런 싸인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꼭 그 아이들의 요청이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1 순위자와 2 순위자의 관계.

이런 이상한 관계가 나의 딸들과 나 사이에 가로 놓여있다는 사실을 언제 인지하게 되었지? 

뭐 과정은 차치하고 결론만 놓고 말하면 나는 2 순위자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나는 2 순위자이기 때문에 나의 의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혹여 나의 의사가 있다 해도 1 순위자인 딸들의 의사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냐는 자기변명으로 무장하고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무장한 무기는 여전히 기능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래서 9월 2일이 지나 달포가 넘어가는 어름인데도 죄스러움을 토로하지 않고 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9월 2일..

바로 그녀가 아이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사람들은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든가 지옥으로 떨어지든가 그도 저도 아닌, 지상에서 회색인으로 살았던 종자들은 돼지우리에 집어넣는 똥돼지처럼 연옥이라는 곳에 깡그리 몰아넣어져 연단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시장통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강심장들의 외침이 맞는다면 아마 나는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예매하지 않았으나 자동으로 천국행 승차권을 발급받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는 진심으로 믿어서 세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믿으면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하였는데,

혹시 만에 하나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이라는 전제 뒤에 숨겨진 조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바울 아자씨가 그런 꼼수를 성서에다 박아놨을 리가. 근데 혹시라도 나 눈치채지 못한 그런 게 있다면 큰일인데...

 

대학 저학년 때까지 열심을 내어 신앙생활했었고, 아이 엄마와 아니.. 아이들이 생겨나기 전의 젊은 그녀와 오산리 금식 기도원(현, 최자실 금식 기도원)을 데이트 코스 삼아 왔다리갔다리 했던 믿음은 정기적금도 아니고 주택청약저축도 아닐진대, 그 이후 교회를 떠나 떠돌이 개인 신앙인으로 표류해 온 나의 삶 어느 구석이 보기 좋고 어여쁘다고 거두어 주실는지 일말의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도 모르게 나의 장래를 예단해보게 된다.

먼저 간 아이 엄마는 천국과 지옥으로 대별되는 저세상의 내막 전체를 알고 있겠지. 그 이전에 너무 일찍 지상과 작별하셨던 나의 아버지 '요한'님은 그곳에서 며느리와 조우하셨을까? 조우하여 서로 잘 지내시는 걸까? 만약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나 모두 그분이 자식으로 똑같이 품어주신다면 그곳에서 만났을 거야. 나는 내 멋대로 그런 궁리질을 해본다.

아.. 진짜 기독교인들이 나의 이런 해괴한 상상력 난장을 들여다보면 잡종이요, 기복 신앙에 진배없고 곡학아세와 같은 종자라고 날카롭고 예리하게 공격해 댈는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나는 진정으로 나의 신앙을 간직하며 외친다.

'이건 파스칼 식 베팅이 아니야.'

'안 보이며 증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숭고한 행위인 거야.'

'마음이 실행하는 믿음인 거야.'

나는 그렇게 우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자신의 쥐꼬리만한 지식으로 지구는 평평한 토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소설을 썼던 것처럼, 현대인은 또 나름대로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과학문명을 기반으로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주를 그림 그리고 있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어쩌면 새로운 주술사와 점성술사가 난무하는 것이 2000년 전의 세상과 판박이처럼 비슷해 보여서 몹시 불편하기도 하다. 어떤 물리 소설가는 11차원의 세상을 써냈고, 어떤 천체 소설가는 다중우주에 나와 똑같은 존재가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소설을 출판해 냈다. 낯짝에 철판을 깔고 입증되지 아니한 신세계를 이상한 나라나 걸리버가 여행한 나라보다 더 신비롭게 늘어놓는 양자물리학자와 천체물리학자들.. 그들이 30세기의 인류 머리 위에 군림하게 된다고 하여서 이 세상과 저세상의 다리가 건설되는 것을 아닐진저.

나는 여전히 믿음의 상상력 속에서 이 세상에 몸담은 채 저세상을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기웃거린다. 조선시대 남정네들이 당장 안에 거주하는 처녀 애들을 훔쳐보듯 나는 이 세상의 담장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저세상의 마당을 들여다보려고 용을 쓴다. 그리고 지껄여 본다.

 

'저기요, 그쪽 세상에 우리 아이 엄마가 있거든요.'

'그러니 내가 그쪽 세상 좀 들여다봐도 되죠?'

언제나 저녁이 오고 아침이 되면서

저세상을 지키는 새벽닭에게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아무런 소득 없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만

나는 그래도 저세상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 먼저 저세상에 가 있는 아이 엄마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데.'

 

그런데도 나는 올해 그녀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겨져 있는 홍성추모공원을 방문하지 못했다. 이혼한 사람이라 해도 나는 뻔뻔하게 그녀의 납골이 모셔져 있는 곳에 얼굴을 내밀곤 했었다. 이혼한 사위임에도 불구하고 둘째 딸이 외할아버지 보고 싶어 한대서 외손녀들을 데려다주러 갔던 나에게 추모공원에 댕겨왔느냐고 물어보던 ex 장인과 ex 장모님... 나는 그럴 때 낯짝 두껍게 나의 내면에 살고 있는 속사람에게 물어본다.

'이것은 인연의 고삐인가?'

나는 정통 기독교인이 들으면 기겁할 발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생각을 주저 없이 행한다. 내지르는 것이다.

그녀가 떠나간 9월을 너무 무덤덤하게 보낸 죄과가 10월에 징조로서 임재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의 길을 걷는다. 사유17호처럼.

 

길바닥엔 노란색, 주황색 나뭇잎들이 즐비하다.

저 편린들...

그것을 쳐다보며 내 생각의 길을 계속 걸으면 나는 어디에 당도하게 되는 걸까.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이어지는 쪽문이 나오고 그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편안하게 저세상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건가?

그래.. 도대체 저세상이 없으면 인간이 만들어진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우겨본다.

 

외출했던 둘째가 귀가했다..

그녀는 1 순위자다.

 

 

The Loge, 1879 / Auguste Renoir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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