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자는 데 문자가 왔다.
'아파서 내일 쉬어요'
다 아는 얘기지만 단문의 문자는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화면에 전체 내용이 고스란히 뜬다.
열어보지 않아도 핵심과 전말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읽은 티를 내지 않았으므로 별도의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읽씹 했다는 걸 상대방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방에서 자고 있는 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녀석이 곳곳에 널부려놓은 휴지와 비닐봉지들을 분리수거통에 집어넣고 검은콩 건빵 1 봉지와 아메리카노 커피 한 병을 꺼내 먹었다. 티브를 켜니 진부한 뉴스들이 진부한 앵커들의 입을 통하여 내 생활공간으로 들어오더니 진부한 나를 어지럽힌다. 검정콩 건빵을 씹다가 궁리질한다. 검정콩 건빵이라 하지만 정말 콩이 함유된 비율은 극히 일부일 텐데 나는 광고하는 인간들의 카피 라이트에 넘어가버리고 만다고.. 그래도 씹는 질감에 차이는 느낄 수 있어 가볍게 혹은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는 방편으로 건빵을 선택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검정콩 건빵 안에는 별사탕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결코 건강 친화적이지 않다. 검정콩이든 그냥 건빵이든 밀가루 음식인 것 자체는 변한 게 없으니까. 그걸 알면서 행하는 이러한 잘못이 얼마나 나의 삶을 갉아먹고 있을까?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서 그런 느닷없고 쓸모없는 상상으로 멍 때리고 있는데 둘째가 깨어 기침을 한다.
"어디가 아픈 거니?"
나는 정말 나쁜 버릇이 하나 있는데 둘째가 아프다고 말하면 액면 그대로 <아프다>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다. 참을 수 있는데 둘째니까 아픈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있어도 둘째는 견디지 못할 수 있는데 나는 그걸 수용못한 거다. 실제로 둘째가 그런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있는 그대로 둘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이었다.
"감기에 중이염이 있어요. 지금 병원에 가봐야 돼요."
나는 뜻밖의 말을 듣고 선택의 여지없이, 아침 대용으로 씹던 조그마한 건빵 봉지 안에 다수의 건빵 알갱이들을 방치한 채, 탁자 위에 모셔온 아메리카노 커피를 담은 플라스틱 병을 뚜껑으로 막아 놓고 서둘러 둘째와 함께 내려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지만 갑자기 닥친 제트기류의 북풍을 피하려면 차를 몰고 가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둘째에게 물었다.
"네가 처음 중이염에 걸린 게 초딩 2년 때이니 3년 때이니?"
"며칠 전에도 걸렸어요."
"아니, 그건 말고 처음 중이염 걸렸을 때 말야. 그땐 약으로 치료가 안 되어 수술을 받았잖니? 엄마 몰래 병원 가려고 내가 회사에서 외출 나와 하교하는 너를 병원으로 픽업했잖아."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다고 하여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약물로 중이염 치료가 안될 정도로 귓속 염증이 딱지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있어 수술(귀에 도구를 집어넣어 염증을 터뜨리는 것)을 해야 했을 때.. 나는 이비인후과 의사 앞에서 OK 할 것인가 NO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녀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체에 칼을 드리 내민 일인데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구나.. 나는 혼자서 깜놀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맞는 말이었다. 그건 진리에 가까운 명언이었다.
그때(약 20년 전), 나는 둘째가 엄마에게 먼저 알리지 아니하고 나에게 알렸던 것을 감사하였지.
천우신조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꾸만 티브 앞으로 다가서는 아이에게 내가 물었었지.
"왜 자꾸 티브 앞에 다가서서 보는 거니?"
"소리가 엷게 들려요."
그 말을 엄마에게 먼저 하였더라면 둘째를 데리고 기도원에 들어가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아이 엄마는 병을 치료하러 의사를 찾기 보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귀신을 몰아내야 한다는 신념을 불태우고 있었다. 젊은 그녀의 신념에 대적하기 힘들어 나는 제임스 본드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마치 공공칠 작전을 벌이듯 아이 엄마 몰래 둘째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추어 픽업하여 병원을 찾았고, 또 치료를 마친 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반복하였다. 다행스럽게 중이염 치료를 마쳤고, 둘째는 정상적으로 청각기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마치 어제저녁에 경험했던 일처럼 선명한 기억인데 녀석은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구나..
병원 진료를 마치고 둘째가 말한다.
"오늘은 쉬는 게 좋대요."
"약은?"
"처방전 받았어요."
"며칠 분 약 처방을 받았는데?"
"3일요.."
아마 염증을 태워서 말려버리도록 약 처방을 해준 것 같았다. 나는 둘째와 병원을 나와 마트 주차장에 주차한 차로 돌아왔다. 나온 김에 마트에 들러 살 것을 챙기려 같이 마트로 들어갔는데 둘째는 입구에서 플라스틱 시장바구니를 집어 든다. 뭐지? 내가 천 쪼가리 백을 들고 왔는데?
자연스럽게 나는 나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마트를 돌았다. 그런데 나는 카운터 앞에서 만나 둘째가 들고 온 시장바구니 안을 들여다보고 깜놀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뭘 이렇게 많이.."
녀석은 생활비 및 용돈으로 나에게서 별도로 타 가고, 자기가 알바하면서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벌고 있는데 나랑 마트에 가면 내가 계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제 카드 드려요?"
나는 그렇게 쪼잔하게 행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녀석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터라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좀 많다.. 인스턴트 카레 대여섯 개, 매운맛 고추참치 6캔.. (이건 왜 매운맛이람.. 나는 매운맛 참치, 매운맛 라면, 매운맛 카레.. 이런 건 안 먹는다. 라면은 진라면 순한 맛만 선택한다.) 까칠하기도 하고 까탈스러운 면이 있는 나의 기질... 이것도 둘째와 좀 차이를 드러낸다. 그래. 완전 똑같으면 재미없잖아..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니 3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나는 둘째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건 테러리스트와 진배없군"
갑자기 어디서 주워들은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삶의 영역으로 들어와버렸다.
"아, 완전 테러 당한 기분이야. 나는 마트에서 한 번에 2만 원 이상 구매한 적이 없어. 이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야."
둘째는 나의 말을 경 읽는 소리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멘트였다. 사실 나도 딱히 둘째에게 의사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대신 속으로 중얼댔다. 초능력이 있으면 텔레파시로 송신되었을지도 모른다. 송신 내용은 이렇다.
'하지만 테러를 하루에 열 번 당하더라도 말이지. 네가 아프지만 않으면 나는 익스큐즈 할 수 있어. 나는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니까, 그러니까 아프지만 말아줘.'
입으로 한국어를 소리 내어 말한 게 아니라 마음에서 생성되는 초능력, 아마 텔레파시일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이용하여 둘째에게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 혼자 하는 생각이겠지. 그리고 집으로 귀가했다.
둘째가 쉰다고 해서
살살 꼬셔서 김포공항 롯데시네마로 영화 구경이나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아프다니 그건 자중하고 오늘은 조신하게 하루를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테러당한 남자니까 당근 그리하는 게 맞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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