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가족은 명절이면 돌아가면서 집들이 같은 모임을 가진다. 추석과 설날, 그리고 어버이날이나 엄니 생신이 그 집들이의 대상이 된다. 장소는 엄니가 정하시면 그 명에 맞추어 우리 형제는 돌아가면서 집들이를 하는 셈이다. 형제는 2남 2녀다. 60년대 출생자들인 우리 형제는 그 시절 평균 기준에 맞는 가족수로 형제를 구성했던 것이다. 알고 계시는지. 베이비 부머 세대인 셈인데 그때 제일 좋은 자녀숫자가 바로 2남 2녀였다. 그 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딸 구별 말고 등등 해괴한 출산구호를 등장시키면서 인구억제정책을 펴왔던 세상을 나와 나의 형제들은 살았다. 이제는?
다 잘알고 있잖은가. 아기를 낳으면 국가에 애국하는 세상이 되었고, 각 지자체마다 출산 장려금이니 무슨 장려금이니 하면서 출산유도 정책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심지어 어떤 기업에서는 자식 1명 낳을 때마다 1억씩 주기까지 한다. 우와~ 세상이 경천동지 하게 변하였고 상전벽해처럼 변하였네. 그렇게 세상과 산천초목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고 때론 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진풍경도 벌이곤 한다.
암튼, 그해 추석 때 우리 가족은 둘째 여동생네 집에서 모임을 가졌었다. 둘째 여동생은 남양주지역에 집을 구하여 전원생활을 시도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남양주 여동생네 집에서 전원주택 내에 자리한, 지금은 폐점한 레스토랑 시설 안에서 식사를 마친 후 우리 가족은 전원주택 본체의 살림집 거실로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언니를 만난 둘째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말했다.
"언니 아빠가 나더러 관종이래.."
"왜?"
"내가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며 혼자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거든.."
"그게 어때서?"
큰 애는 센스 세포가 그리 발달되지 않은 순둥이다.
"사람들에게 어필하려 한다는 거지.."
"아.. 그렇구나"
"웃기지 않아?"
나는 당시 둘째에게 유머감각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나름 진심이었다.
"왜. 있잖니? 거리를 걷다 보면 여자나 남자 혼자서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쳐다보는 걸 자주 보게 되더라. 그게 도통 이해가 안가.."
"왜요"
둘째는 내심으로 찔리는 게 있는 듯 나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혼자서 카페에 죽 대리며 그러는 거, 남에게 보이려는 행위잖아. 일종의 관심 종자 아니니?"
"아녜요, 그런 사람이 어딨 어요?"
둘째는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카페 분위기가 PC 작업이나 책 읽기 능률을 더 오르게 해주는 때문이죠."
"무슨.. 집중력이 떨어지기만 할 뿐이지.."
다시 둘째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활기찬 분위기가 오히려 에너지를 얻게 해 준단 말에요.."
나는 둘째의 말이 머리로는 직수입되었지만 가슴까지 당도하지 못하는 걸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둘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페에 혼자 나가서 태블릿에 그림 그리는 둘째에게 그런 얘길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나이 사십을 넘어서면서 소위 말하는 직관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걸 알아차렸는데, 내가 가진 직관으로 보면 분명 둘째에게도 관심 종자의 싹수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둘째는 나의 DNA를 물려받은 나의 분신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둘째에게 관종 기질이 있다 하여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평소.. 나는.. 스스로 관종 기질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그것을 자제하거나 컨트롤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터였다.
이혼 후 어찌어찌하여 돌싱 카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카페 글쓰기를 중단하는 게 현명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좀체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카페의 동년배 카테고리에 서식하면서 나의 글에 하이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수컷들을 경험하고는 환멸감을 느꼈었다. 아..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치정 이혼의 피해자이기보다는 가해자일 가능성이 높겠어. 그래서 질적으로 저급한 작자들과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걸 피할 수도 없겠는걸? 나는 내 맘대로 그렇게 진단 내리고는 '카페 글쓰기를 그만두어야겠어.' 라며 독한 마음을 먹고 오랫동안 올려왔던 글들을 미련 없이 삭제해 버렸다. 물론 블로그에 다 저장되어 있으니 카페에서 삭제하여도 나의 삶의 이력이 분실될 문제는 없었다. 다만 카페에 들락거리는 여인들 중에 혹시 나와 미래의 짝꿍으로 예정된 그녀가 나의 존재를 알아보는데 더 많은 세월이 소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감수한다면..
그런데.. 나는 아마 중독되었던 모양이었다. 한때 카톡과 카페 댓글을 통해 교제를 나누었던 영국 거주 여인이 나와 사귀게 되면서 카페를 탈하였으나 여전히 카페에 잔류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당신은 이제 카페 없이는 살 수 없는 건가요?"라며 아픈 곳을 지적했었으니.. 그런 나의 과거 모습뿐 아니라 지금의 내 모습도 여전히 카페에서 해방되지 못한 몰골을 보이고 있으니... 나는 내가 생각해도 관심 종자가 틀림없었다. 그러하니 나의 피를 물려받은 나의 딸이 관종 모습을 내비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걸 알면서도 내 딸은 내가 가진 못난 모습을 되풀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적질을 하였던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참.. 나는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똑같이 둘째에게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무섭고 섬뜩한 내력.. 나 자신은 성취하지 못했으면서 자식은 나의 단점과 결점을 극복한 인생이기를 희망하는 마음.. 이건 유전이네? 아버지는 살아생전 서울대를 나온 큰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국민학교(당시엔 초등학교를 그렇게 불렀다)에 들어가지도 않은 나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나눗셈까지 주입시키지 않았던가. 국민학교 4학년은 되어야 배웠던 나눗셈을... 나는 비록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딸에 투사되는 내 마음밭을 살펴보면 여전히 나의 핏줄 속에 아버지의 염원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사실을 깨우치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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