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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정신줄을 잃은 것일까?
히타이트는 고장 난 시계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얘기인즉슨, 히타이트는 어떤 경로로 이상한 나라 K에 당도하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웜홀을 통과하고 나서 빛의 속도보다 몇백 배 더 빠르게, 아니 정신세계의 흐름을 뛰어넘는 속도로 K 국에 입국하였었나? 가물거리는 기억의 언저리에 람시스가 뭔가 하는 이름 석자가 떠올랐다가 반딧불이처럼 사라졌다. 스스로가 '별'인 줄 알았다는 그 개똥벌레처럼 히타이트의 정신세계도 지금 섬망이 망실된 것인지도 모르지.
아니, 카프카의 분신 그레고르(Gregor)가 방에서 자고 일어나니 갑충(딱정벌레)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어느 날 일어나니 이상한 나라 K에 들어와 있었고, 그 나라 옆구리에 위치한 철공소를 견학하는 여행자 신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견학지는 옆구리 가장자리에 있는 D시의 H철공소였고, 거주지는 수도 S시의 K공항 옆 동네였다. 배를 통하여 나라에 입국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마 나는 그 공항을 통해 <K> 나라에 들어왔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오백 년 도읍지라 일컬어지는 수도 S시에 둥지를 틀었다. 뭐, 거기까지 잘 진행된 셈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의 여행 형태는?
여행자 신분인 나에게 아내가 있었을까? 다시 기억이 가물거린다. 도대체 누가 나의 뇌리를 쥐어 흔든 것일까. 람시스는 이집트 파라오 이름인데 왜 자꾸 그 이름은 떠오르나. 이집트 파라오 중에서도 뻥치기로 1 등가는 인물이었지. 흔들릴 때마다 한 람시스하는 형국이라니.. 암튼 나는 여행하는 입장에서 혼여일 수도 가족여행일 수도 있는 어느 하나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뭐, 혼여라 해도 지구별에 와서 다시 결혼했을 수도 있다. 결혼을 반복한다는 게 흉이 되는 별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정작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 곁가지로 여겨도 좋았다. 뿐만 아니라 나는 장기여행자 신분이라면 여행지에서 꼬박꼬박 일기를 쓰는 게 기본인데 그런 기본을 행하지 않았던 부실한 여행자였으므로 아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아내가 있었는지, 그리고 있었다면 그 아내가 김건희 같은 아내인지 아니면 뭐 그 반대자리에 있을만한 꼬레아적 비교대상으로 삼을 여성이 누가 있나? 젠장 떠오르는 여인이 없다. 그런 지난 여행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 과음 후 필름 끊긴 것처럼 들쭉날쭉 떠오른다. 바로 그 점이 지금의 글쓰기를 잉태한 동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짜깁기해 보면 아내는 5~10년 전 그 어느 어름의 가을날, 홀연히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떠나갔다. 그녀는 조씨병이라고 불리는 무슨 불치의 병을 앓았던 것 같다. 그럼 아내가 곁에 있었을 때, 나는 아내를 사랑한 남자였을까? 질문에 단정적으로 답변할 수 없지만 아내와 사별한 이후 밀려오는 적적함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존재한다. 만약 전동 톱으로 나의 머리를 잘라볼 수 있다면 내 대가리 속 대뇌의 피질 어느 한쪽 구석에서 사라져 버린 부부의 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내를 잃는 사단은 K국 여정 중간에 발생하였으므로 이후에 이어진 나의 K국 여행은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단속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편린을 짜깁기해 본 결과, 이상한 나라 K를 여행할 때 나의 신분은 솔로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처럼 솔로의 눈으로 보았던 지구별의 K국에서는 지구별의 타지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떼창이니 헌팅 포차니 박제된 음악 양식이 다시 역주행하고 있었고 유독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런 특별한 풍경은 정착촌 S시를 포함한 수도권에서 더욱 요란했다.
S시에 자리 잡은 이후 인터넷 카페를 기웃거리게 된 사유는 솔로가 되어버렸기 때문인 바,
K국 여행을 전후하여 나는 인터넷 카페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K국 유명 포털사이트 2곳 중 하나인 <내일>이라는 공간에 자리 잡은, 활동량이 오두방정 떨듯 현란하게 많았던 카페 <리씽>에 가입하였던 것이다. 사실 처음 가입할 땐 몹시 쭈뼛거렸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맛집 탐방을 하든, 체험학습을 하든 아니면 경개 좋은 대자연으로 휘리릭 산보 떠나든 나는 일단 무얼 하기 시작하면 관성의 법칙이 발현되어 가솔린 자동차 꽁무니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소화합물처럼 간단없이 열정을 내뿜는 것이 특징인 인물이었다. 그리하여 이태가 지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리씽>에서 눈에 띄는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짐작하였는지 모르겠지만 <리씽>이란 단어는 영어에서 파생된 축약어였다.
유럽인들은 몇십 년 전부터 축약어 사용을 즐겼는데 K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IT 문명이 꽃 피기 시작한 21세기에 들어와서 단어를 줄여서 말하는 간략어가 때늦게 유행되고 있었다. 중세의 페스트처럼 천방지축으로 발호하는 언어유희와 추종자들의 충성심은 반도 전체를 삼켜버렸고, 그런 축약어를 얼마나 많이 알며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사하느냐는 신세대와 구세대를 구분하는 탐침자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간략어, 혹은 축약어를 많이 알고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젊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젊은 사람 중에서도 유연한 사고를 가진 매력 있는 존재로 부풀러져 인식되는 오류가 곳곳에서 발호하고 있었다.
여행자는 그런 시대의 조류나 잠깐 휩쓸고 지나가는 유행에조차 쉽게 물들고 동화되는 플렉시블한 DNA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여행이란 새롭고 신기한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며 그런 즐거움을 맛보고자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취미이므로 나 역시 축약어 <리씽>에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그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겨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갖추었던 것이다. 오~ 이 얼마나 예쁜 처신인가.
리씽의 원 단어는 Returned Single이다. 그 두 단어를 <K>국 언어로 옮겨 쓰면서 <리씽>이라는 국적불명의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비틀어서 탄생한 <돌싱(돌아온 싱글)>이라는 국적 불명의 일반명사가 물수제비처럼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커플에서 싱글로 원위치하는 족속들도 그만큼 활발하게 생겨났음을 두말할 것도 없는 얘기였다. 처음 <돌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을 때는 K국의 문화를 선도하는 S시 사람들조차 우스갯소리로 그 단어를 입에 올리며 유머의 일환으로 여겼다. 그러더니 불과 3년이 지나지 않아서 어느새 <자유로운 영혼>을 대변하는 부러운 단어로 탈바꿈하였다. <돌싱>이라는 단어가 스스로 자신의 영역 확장을 이루는 그룹의 일원이 됨을 의미하더니, 어울리지 않게도 멋진 이미지까지 덧씌우게 된 셈이었다.
그리하여 이즈음의 반도국 사람들은
<돌싱>에 대한 아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묘한 심리적 이중성을 내포하고 은연중에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싱이라는 존재 그룹은 물에 젖은 주홍 글씨처럼 근원적으로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안고 살아야 하는 마음고생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카페에 접속하면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파되어 왔다. 주홍 글씨는 비록 빛바래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지워질 수 없는 존재론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그 잔재는 늦겨울의 잔설처럼 여실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S시의 돌싱 시민들은 웬만하면 매력적인 존재론적 지위를 인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나는 엄밀히 말하면 돌싱이 아닌 사별자였지만
사별자만 모이는 유형의 사교 카페를 포털사이트에서 찾기가 너무 어려워서 자연스레 <이혼 남녀> 그룹의 구성원이 되기로 작정하였다. 알고 보니 <K>국 사람들은 원숭이나라 인간들만큼이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 족속이었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그들 지경 내에서 아직까지(그때까지)는 이혼 남녀라는 존재가 지구별의 타지처럼 보편화되지 못했으므로, <돌싱>이라는 단어를 폭넓게 해석하여 사별 남녀들까지 범주에 포함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민속의상을 빌려 입고 고궁 산책하며 색다른 기분을 맛보는 외래 여행자들처럼 카페 활동이라는 의상을 입고 점점 더 깊숙하게 <K>국 여행에 빠져들어갔다. 일종의 2중 플레이를 시작한 것이다. 오프라인 여행자와 온라인 여행자로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 아 이거 너무 웃기는 설정 아닌가?
지구별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나라와 동일하게
<K> 나라에서도 <이혼 남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차별 대우를 당하거나 멸시받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리했다. 하지만 <K>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공자를 숭상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을 완전하게 청산해내지 못한, 사실상의 유교국가였다. 즉, 21세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싱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드러내어 말하는 일이 부담스러운 환경의 나라였다. 내면으로는 부러움을 느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기로는 <돌싱>에 대한 거리감이 병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상한 나라. 그것은 마치 이끼 낀 시골마을에 들어간 도회지 신사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화적 충격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리씽과 같은 온라인 이혼 남녀의 모임이 활성화된 근저에는 그런 지워지지 않는 문화적 내력과 전승되어 온 DNA의 위력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상한 나라 K에서 나의 이름은 <목>이었다.
유럽여행에서 사용했던 이름 Wood를 <K> 나라 단어로 바꾸니 목이 되었다. 당연히 '목(木)'은 나무를 의미한다. 최근에 대행의 대행이라는 인물도 목이란 이름을 가졌더구만.. 잠깐 역사를 살펴보니 K 국이 은둔의 조선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나라로 이행하려 했던 무렵, 그러니까 대한 제국이 억지춘향 격으로 건국되던 어름이었던가? 언더우드라는 양키인이 개화기의 <K> 나라에 잠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한 전력이 있었다. 그 시절, 비록 내가 UnderWood 가문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진 건 전혀 없었지만 양키인 UnderWood는 나를 대신하여 이 나라를 방문한 여행 선구자처럼 여겨졌다. 그는 여행자 신분으로 입국한 후 K 국에 눌러앉았는데, 오늘날 <K> 나라에서 버금가는(둘째가 되는) 대학으로 성장한 Y 학당을 세운 바 있었다. 내가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나의 이름 Wood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카페 리씽에서 Wood란 이름은 결단코 사용하지 않았다. '대명사용'이라는 문화가 매우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K> 나라 인민들은 인터넷에 들어가서 본명을 감춘 채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것은 유교국가의 선조들이 조정에서 버림을 받으면 낙향하여 은인자중·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전통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나는 유행병처럼 퍼져 있는 21세기의 <닉>이 과거 유교 사회의 <호>나 <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하여 D시의 철공소 견학 과정에서 알게 된 고대국가 히타이트(hittite) - 최초의 철기 문명국 - 라는 이름을 주저 없이 아이디로 낙점하였다. 하지만 잔머리 굴리기 잘하는 종족들인지라 5천만 명의 <K> 나라 인구 중에서 이미 익명의 어느 남자가 그 아이디를 선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친절하게도 포털 사이트 운영자는 '이 아이디는 이미 사용 중입니다'라며 문자로 고지해 주는데 내가 무뢰한처럼 히타이트(hittite) 아이디를 임의로 취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두뇌를 회전시킨 나는 궁여지책으로 21세기를 뜻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덧붙여서 hittite21이란 아이디를 작명해 내었다. 웃기는 건 히타이트가 원래 이름인데 그걸 K국 카페 '리씽'에선 대명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건 이중구조가 아니라 뫼비우스 구조라고 해야 하나? 아님 평행우주론적 논리?
암튼, 작명은 해산의 고통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완결시킬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그것은 결코 잔머리 굴려서 얻어내는 언어유희로 치부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내가 작명한 아이디에 스스로 <21세기에 출현한 히타이트>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런 아이디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카페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이태가 지나지 않아 나의 소행이 신선하게 인식되었는지 <K> 나라 돌싱녀들로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실물 세상이든, 사이버 세상이든, 여행길이든, 일상의 공간에서든,
외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즐겁고 짜릿한 일이다. 나는 비록 여행자의 입장에 불과하였으나 사이버 세상에서 타인의 관심받는 일이 마약처럼 중독성 있는 쾌감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마취된 듯 비몽사몽간 카페 활동에 열심을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버 세상에서 관심의 파도에 떠밀려 온 한 여인과 조우하게 되었다. 조우가 아니라면 내 그물로 걸려든 물고기였을 법한 그녀를 어느 여름날 종각 아랫길로 이어지는 뒷골목 선술집으로 불러내어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녀는 7년 연하의 국씨녀였다. 그녀와 연결된 끈은 한강변에 따라 자리 잡은 변두리 동네 성동구 금호동에 있었다. 금호동은 K국 S시 여행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정착했던 지경이었다. 옥수동 옆 금호동 골짜기에 어려있는 청춘의 추억이 그녀와 나를 서로 이어 주었고, 나는 그날 밤 금호동 어느 노래방의 어두운 밀실에서 술 취한 그녀에게 짙은 스킨십과 프렌치 키스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는 국씨녀를 가슴에 오래 품지는 않았다.
여행은 몸이 하는 여행이 있고, 마음이 하는 여행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여름에 만나 찬바람 이는 늦가을에 국씨녀를 떠나보내었어도, 그녀 생각이 온몸을 휘어잡는 순간이 오면 나는 몸의 여행을 중지하고 마음의 여행을 떠나야 했다. 즉, 나는 지경과 지경을 떠다니며 몸으로 여행하는 동시에, 마음으로는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으며 무중력 상태로 유영하는 별나라에서 온 지구별 여행자였다. 한 가지 문제라면 몸의 여행과 마음의 여행을 자유로이 조율할 수 있을 만큼 깊은 내공을 쌓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나의 방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람이란 자기만의 여행법을 택하는 자유의지를 타고난 존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정착촌은 야누스 이상의, 아니 카멜레온 보다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존재했다.
나는 금호동뿐만 아니라 S시 곳곳을 누비며 여행의 기록을 남겼다. 댕댕이가 산책 나가면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고 주인이 재촉하는데도 아랑곳 않고 오줌을 내깔기듯이 나는 S시 곳곳에 나의 유백색 정액을 흩뿌렸다. 지금도 S시 구석구석에는 정액을 뿌리며 영역 표시하는 수컷들이 발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컷의 상대 중에는 유년 시절 빨강 머리 앤처럼 조신한 몸짓을 보여주었던 여인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 수컷으로서 행하였던 인간 암컷에 대한 신성하고 아름다운 의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유년의 빨강 머리 앤이 존재치 않았던 나는, 그리고 여행 중 아내를 잃은 나에게 다른 방도는 없었다.
비록 <K> 나라 수컷들이 기분 나빠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행자로서 내가 만난 S시 여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공자가 말했다지? 나이 40이면 불혹이라구. 그건 꼬레아 인민이 열렬하게 떠받드는 공자님이 40이 되기 전에 이것저것 다 해봤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런 내력을 가지지 못한 순진남이 공자님 말씀만 받들어 40살 이후 인고의 노력으로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는 필시 지구별 여행 말미에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해보지 않았으면, 내가 조언해 주건대, 후회하지 않도록 해보고 나서 죽으라고 말하겠다.
뭘?
'연애' 말이다.
일찍이 <K> 나라 위대한 소설가가 여자 꼬시는 장면을 묘사하며
'죽으면 썩어 없어질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몸인데 무얼 그리 아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는 후회하지 않는 지구별 여정을 보내는 차원에서 화곡동 인적 드문 버스정류장에서 띠동갑 탈북녀와 키스를 나누었고, 인사동 골목 한옥 모텔에서는 국씨녀와 진한 밤의 향취를 마셨다. 카페에서 조우하였던 쪼그만 여인과 삼청동 길을 산책했으며 늘씬했던 14살 연하녀하고는 해설사를 따라 달빛이 교교로운 창덕궁 관람을 즐겼다. 아, 물론 나 홀로 거리로 나서서 정착촌 한가운데 자리 잡은 종묘, 그 기다랗게 드러누운 기묘한 사직 안마당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지구별 여정의 시종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잠겼던 시간도 있었다.
당신의 여행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이 행복의 나라에 이르는 루트 역시 제각각으로 다르다. 나는 지구별 여행을 통하여 그런 다양한 루트가 천지빼까리로 널려있음을 보았고, 나와 다른 루트로 여행하는 사람의 성향과 그 방식을 존중하게 되었다. 여행을 통하여 체득한 가치가 있다면 내가 선택한 루트를 통하여 스스로 행복한 마음에 물들 수 있을 때 그것이 최고의 여행이라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타인의 방법에 절대 딴지 걸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곁가지를 체험하고 싶어 한다.
나는 여행하거나 혹은 여행지에서 산책할 때 두서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의 나래 펼치기를 즐겼다. 어느 날 종묘의 돌 마당을 거닐면서 정신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였던 놀이를 가리켜 <나만의 유리알 유희>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오래전 도이치의 유명 작가가 그런 놀이를 하였다는 게 아닌가? 심약한 사람은 손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두터운 소설책을 펴냈다고 하던데, <유리알 유희>라고.. 하참, 그것은 <19금 어린 왕자> 류이거나 성인물로 재출간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쯤 되는 이야기인지..
암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독창적이지 못하면 마음이 충족되지 않는 성깔을 지녔던 나는 최근에 들어와서 <내 멋대로 사유>라는 단어로 나의 유리알 유희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비밀인데, 나의 정액이 흩뿌려진 정착촌 지경 곳곳에는 <내 멋대로 사유>의 흔적이 배경처럼 물들어 있음을 밝혀둔다. 그리하여 나의 비밀스러운 흔적을 간직한 S시는 <K> 나라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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