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해 보자. 소중했던 우리 사랑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들만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사랑은 케바케(case by case) 일 수밖에 없으며, 나는 지금 지구별 여행에서 겪었던 유일무이한 사랑, 'Drive and Stop Love'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자동차 안에서 데이트 즐기는 방식은 21세기에 생겨난 것이다. 사실 제한된 공간에서 나누는 수다와 스킨십을 가리켜 고급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이게 된 사랑 방정식이니까. <K> 나라는 유교문화의 잔재를 완전 청산하지 못하였으므로, 인기 가수나 배우들이 연애하려면 참 힘든 지경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따돌리기 위해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질 뿐인데,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1) 자기 집에서 오붓한 사랑을 키워가든가,
2) 외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카 데이트를 즐기든가..
마지막으로 그런 데이트 선택지를 초월하여 먼 나라로 여행 가는 방법이 남아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일상으로 행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나는 Y 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이었다. 누가 알아보는 유명 인사는 더더욱 아니어서 카 데이트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거니와 선호할 입장도 아니었다. 하지만 Y 시의 엽(葉)은 사정이 달랐다. 그곳은 그녀의 생활 근거지이자 경제활동의 본거지였던 것이다. 즉 카 데이트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해당사항이 있으면 그런 선택지를 운명의 여신으로 받아들게 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그 사람 '엽'인데..
엽(葉)은 대학 졸업 후 영어 어학원을 시작하여 20년 넘게 그 분야에 몸담아 왔다는 이력 혹은 경력녀였다. 나를 만나던 즈음 그녀는 아마도 그쪽 방면에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상대하는 주 고객은 누구인가!
누구냐 하면,
풀어놓은 염소 새끼마냥 Y 시 온 거리를 쏘다니는 대책 없는 초중딩들이었다. 그들의 쏘다님이 왜 문제? 그 염소 새끼들 뒤에는 맹렬한 교육열을 탑재한 도사견이 도사리고 있으니 문제이지.. 그리하여 그들의 쏘다님에 재수 없이 걸려드는 일은 스스로 낭패를 자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연예인급 데이트 방식이라는 2가지 선택지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그네들은 언제 어느 길모퉁이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빙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만약 전투력이 충만한 염소 새끼들에게 한번 걸린다면 소문은 크레모아처럼 불꽃을 튀기며 온 지경으로 번져나갈 것이 뻔했다. 청춘 남녀이든 중년 남녀이든 연애 세포가 특별히 발달한 사람이 아니라 해도 연애전선에 뛰어들면 사랑에 빠진 상대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여 어떻게 처신할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나의 관점도 동일했다. 건전한 Y 시민으로 살아가는 엽(葉)으로서 그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건 프로페셔널이 지녀야 할 미덕이 아니며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도덕률에도 반(反)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그녀의 집에서 하는 몰래 데이트는?
나 홀로 그런 상상을 뜬금없이 뇌까려본 적이 있었는데 이내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동거 중인 두 자녀뿐 아니라 파수꾼의 눈을 가진 이웃에게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뭐 요즘처럼 주변에서 목격하는 비빔밥 마냥 이것저것 뒤섞인 메가 도시라면 X, Y, Z세대가 늴리리 맘보 뽕짝 뽕짝 어울려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연애 행각을 벌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땐 지금과 달랐다. Y시가 메가 도시도 아니다.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Drive and Stop Love'에는 의외의 묘미가 있다.
우리가 데이트 코스로 애용했던 K대 Y캠퍼스로 차를 몰고 가기 전, 그녀는 아파트 단지 앞 사거리에서 달달한 도넛과 시럽이 들어가지 않은 핫 아메를 사들고 조수석에 오르곤 했다. 그것은 K대 언덕배기 주차 마당에서 수다 삼매경에 들어가는 보조재로 안성맞춤이었다.
"블랙커피를 마실 때는 달달한 걸 먹어줘야 해요."
그렇게 종알거리며 내 입으로 도넛 조각을 밀어 넣던 해맑은 손가락과 손등.. 그녀를 상징하는 희고 맑은 이미지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 색깔 그대로 망막에 아른거려 온다. 아, 여기서 알려드리는데 나는 미술친화적인 인간이라서 색상에 풍덩하는 경향이 농후한 존재다. 그녀의 색상은 흰색, 밝은 청색 그리고 맑은 살색이다. 만약 음악친화적인 인간이라면 그녀의 목소리에 껌뻑했겠지만.. 그게 아닌 이야기 마니아라면 그녀의 조잘거림에 반하였을 수도 있다. 이쯤 하면 눈치챘겠지만 이것들은 모두 자동차 안에서 가능한 소통법이요 데이트 형식이다.
그녀를 만났던 시절은 신록이 움터 나오고 햇살 익어가는 초봄이었다.
내가 경험한 지구별에서 봄의 전말은 이러하다.
겨울철 대지를 지배하던 동장군이 꼬랑지를 내리며 뒷문으로 물러나고 싸리문 입구에 태양이 어른거리기 시작할 때..
봄은 따스한 햇빛으로 다가와서(이 시기는 태양의 봄이다),
꽃 피는 시절로 이행하며 화사한 빛을 발하였다가(이 시기는 꽃 피는 봄이다),
마침내 눈부신 신록(이 시기는 신록의 봄이다)으로 마감한다.
나의 어록에 등재되어 있는, 여름과 가을을 잉태하고 있어 더욱 아름다운 봄.. 그중에서도 내 마음이 가장 설레는 기간은 4末5初, 연초록이 움터 나는 신록의 봄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볼 수 없지만 빨강 머리 앤을 애인으로 삼은 나는 그걸 볼 수 있었다. 먼 훗날 돌아가게 될 천국의 풍경을 닮은 초록 초록한 그 정경을..
하지만 그해 초봄은 신록보다 더 아름답게 빛났었다지?
햇빛에 대지가 데워지기 시작하는 새봄,
흙 속에선 버러지들이 꼬물거리고 때때로 바닐라 스카이가 온 천지를 집어삼킬 기세로 덮쳐오던 경기 남부의 어느 소도시에서, 그녀와 습관처럼 행하였던 'Drive and Stop Love'는 꿈속의 사랑같이 잡힐 듯 말 듯 아련하게 떠오른다. 중형차 안에 달콤한 도넛과 부드러운 커피콩 향기가 버무려지고 봄 태양이 월담하여 카시트를 구수하게 데워줄 때... 그땐 마치 사랑의 핵융합과·핵분열이 애니팡처럼 팡팡 터지는 타임이 시작되는 거지. 이를테면 나는 마약보다 진한 연애의 행복감에 중독된 뽕쟁이였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별 여행자는 카파도키아 상공의 열기구처럼 부풀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엽(葉)의 붉은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지.. 일상에선 용납할 수 없는 행동도 연인 사이에서 일어나면 아름답고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다. 경우에 따라 성범죄가 되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랑행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이 오묘한 행성. 좀 수준낮은 별이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 속엔 잊지 못할 묘미가 숨겨져 있었다. 이와 같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극명하게 스위치 온 오프 되는 세상, 어쩌면 지구별 자체가 이상한 별나라 인지도 모른다. 키스를 퍼부었던 그날이 언제였더라? 내 기억 속의 그날은 아마도 하늘이 매우 높았던 날이었어.
그날, 그때, 키스 받은 그녀는 '기습'이란 표현이 무색하게 가만히 나를 받아 주었다.
내 몸의 일부가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갔던 그날, 그때, 나의 혀는 그녀의 입술을 핥으며 촉촉한 입술이 하는 말을 알아 들었다. 무슨 말을 하였는지 공개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비밀이므로..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그녀와의 첫 키스는 이전에 여타 여인들과 나누었던 키스의 추억을 모조리 내쫓아버렸다는 것을.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몸에 들어와 이전부터 똬리를 틀고 살던 잡신들을 몽조리 쫓아내 버린 형국이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내 인생의 첫 키스가 되었다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대로 '인생 키스'를 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숫처녀 같은 수줍음을 간직하며 어떠한 반항의 몸짓도 보이지 않았던 그녀.
하지만 결코 적극적이거나 지속적인 대응을 취하지도 않았던 그녀.
선을 넘을락 말락...
(그런 그녀가 좋았던 나..)
그녀와 헤어진 후,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소로를 따라 길 걷는 나그네처럼 신비로운 정신의 궤적을 더듬어가다가 어드메인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광경에 빠져들었다. 그곳에 싱그러운 이파리처럼 팔랑이는 엽(葉)의 미소가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손짓하는 밝은 미소 주변으로는 샤갈 그림에 등장하는 바이올린의 현이 만들어내는 미끈한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음표처럼 떠다니는 엽(葉)의 목소리였고, 엽(葉)은 신세계로 인도하는 잘 다듬어진 도어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그 문을 열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노라'는 천상의 고지가 준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웜홀을 따라 달려와서 그 출구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있었고, 이상한 나라 K의 (용용 죽겠는) Y시는 미지의 신세계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데미안의 주인공들 음성이 중첩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과 빛나는 눈동자에는 에밀 싱클레어에게 신비로운 연정을 불러일으켰던 에바 부인의 모습이 어려있는 듯했다. 엽(葉)은 시청각적으로 나를 사정없이 사로잡고 있었다..
'Drive and Stop Love'의 추억,
그것은 여러 가지 색조를 띠며 나의 내면에 어른거린다..
향긋한 초록 버러지가 꿈틀 거리며 나를 향해 기어오르는 봄날이었다.
그날은 물기 머금은 나즈막한 논바닥 어느 구석에서 개구리가 소리 높여 개골 거리며 울었던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엔 반짝이는 별들이 밤꽃처럼 흐드러지게 흩뿌려져 있었다. 밤꽃의 진한 향취에 정신이 어질 거렸다. 그날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나는 관심이 없었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다. 수첩공주가 요사스러운 여인에게 농락당하고 있더라도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리플리와 함께 하는 순간, 세상의 중심은 오직 그녀뿐이었으며 내 마음속의 그녀는 전 우주의 중심이 되어 마땅했다.
나는..
마치 싱그러운 나무가 자기 몸을 타고 올라오는 향긋한 버러지를 음미하다가 직접 그 맛을 느끼고 싶어 하는 듯 그녀의 개미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작업은 서로가 알면서도 받아줄 때에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부드럽게 손가락 끝으로, 손바닥으로, 그리고 팔목까지 동원해서 천천히... 그녀의 매끄럽고 부드러운 곡선의 몸을 이리 저리 여행한다. 손이 나의 여행 최전선에 서서 행동하고 있었다.
오직 나의 귓불에는 부끄럽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만 쟁쟁거리고 있었다.
"저, 경쟁력 있는 여자예요."
맞는 말이었다.
개미허리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경쟁력 있는 여자예요."
그 말을 입술의 문을 열고 토로해낸 격정 때문이었을까.. 거의 본능의 이끌림에 따라 몸의 제일 바깥에 위치한 피부 마디(나의 손 ㅋ)로 자기 허리를 텃취하는 남자를 향하여 그녀는 더 깊은, 아니 더 위에 있는 자신(젖가슴이란 뜻)을 드러내 주었다. 아무런 부끄럼 없이..
사유해 보시오.
예기치 않게 엄습해오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인의 당돌하면서도 과감한 행동을.. 아마도 그 상황에 부닥치면, 어느 누구라도 카사노바가 걸었던, 묘하고 신비로운 아스팔트에서 브레이크 고장 난 트럭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제삼자가 그 광경을 목도하였더라면 마나님의 유혹으로부터 몸을 피하지 못한 조선의 돌쇠를 보았겠지. 조선은 이상한 나라 K의 전신이고 돌쇠는 조선의 저잣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수컷의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K> 나라 체험 학습에 열심인 지구별 여행자였다.
비록 나는 조선의 돌쇠만큼 본분을 망각하지는 않았지만,
여인이 베푸는 사랑의 묘약을 소주잔 마시듯 꼴깍꼴깍 연거푸 삼켰다. 사랑에 빠진 수컷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듯, 그녀의 복숭앗빛 유두를 깨물었다. 유두를 깨물면서 칠월의 포도송이를 따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 자체로 그녀의 젖가슴은 백만 불짜리였다. 아아..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젖꼭지를 겨냥하여 남성의 애무 공세가 시작되자 이내 오므라드는 끈끈이주걱처럼 팽팽한 가슴을 브래지어 안으로 숨기고 말았다. 유두를 잃어버린 나의 입술에서 탄식이 수도승의 묵음수행처럼 새어 나왔다.
너무 좋다고 생각하고 내 멋대로 행동하면 간혹 가다 절대자의 질투를 유발하곤 한다.
혹은 이성을 너무 좋아하면 너에게 줄 것이 아닌데 잘못 갔다고 위에 계신 그분께서 의사 번복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암튼, 그때나 그 이후에나 나의 지구별 여정에서 개미허리를 만져본 것은, 그리고 뒤에 기술하듯 여성의 지방질 없는 뱃살을 쓰담해 본 것은 그것이 유일무이했다. 나는 그 아쉬움을 보상하고 싶어서 허전한 손바닥을 전광석화처럼 그녀의 뱃가죽 살에 밀착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경이로움이었다. 지금 이 글이 가는 길은 이상한 나라의 여행기라기보다 빨강 머리 앤이 되려 했던 앨리스를 탐색한 19금 연애담으로 반전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여정에 빨래판처럼 단단한 뱃가죽을 만지는 스케줄이 준비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가장 단순한 살갗의 감촉에서 가장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 아니면..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다'라고 토로하였던 첫 사람 아담의 사랑고백에 빙의하는 일 같이 여겨졌다.
돌이켜 보면 카 시트에서의 Skin Ship은 그녀가 자원했던 일이지만(맞나? 이런 경우 아마도 성범죄와 연루된 사안으로 비화되면 논란의 씨앗이 되는 모양이듯),
지금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식의 기저로 스며들어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뉴런과 시냅스를 통하여 플래시 메모리처럼 떠나가 버렸다. 지금 내 손바닥에 그 내음과 그 촉감을 다시 재생시킬 수 없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분명 이 손가락과 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젖가슴과 아랫배와 허리를 쓰담 쓰담하였건만 지금 이 손에서 그 촉감을 다시 맛볼 수가 없고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한강에서 배 지나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는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상실의 과정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머리와 뇌리에서 휘발되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이 기록이 있으면 오래도록 그 감각과 그 느낌과 그 떨림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녀의 허락으로 맛보았던 감촉과 그 감촉으로 전이되어온 느낌은 이제 바람결에 실려오는 봄향처럼 내 마음의 들판에 흩뿌려져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랑이 어찌하였든지 간에, 나에게 있어서 신록이 움터 나오는 봄날의 행복한 카 데이트는 이성(異性)의 많은 것을 열어 보게 한 판도라 상자였음이 틀림없다.
지금도 보석처럼 빛나는 팔색조 겪음을 떠올리면 나의 몸은 찌릿찌릿 충전되는 '백만 돌이 배터리'로 변신한 듯 전율에 떨게 된다. 'Drive and Stop Love'의 절정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따뜻하고 그윽한 신체 접촉을 시도했던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 정경은 갑자기 정지해 버린 영화의 한 장면으로 뇌리에 저장되었다. 다시 꺼내어 보아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시도가 이루어지던 순간, 나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수줍어하며 마치 고전압 전깃줄에 감전된 종달새처럼, 자동차 시트에 내려놓았던 하얀 손을 바르르 바르르 떨었다. 나에게서 도망치지도 몸을 옆으로 비켜내지도 못한 그녀의 몸이 시공의 좌표상에서 정지해 버린 채 기이한 장면으로 저장되어 있다. 그러다가 봄 태양이 잔설을 녹이는 시기가 도래하면 여지없이 바르르.. 바르르... 떠는 모습을 상영한다. 가을날 털갈이하는 시기에도 마음의 스크린이 바르르 바르르 떤다.
불쑥, 년 전 지구별 중국 여행 중, 북경 전통시장통을 기웃거리다가 보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손님이 꼬치에 끼워 놓은 새끼 전갈을 가리키면 기름에 튀겨주는 몬도가네 식당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버랩된 풍경을 떠올리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버렸다. 꼬치에 꽂힌 새끼 전갈들이 바람개비처럼 쉴 새 없이 발발발 떨고 있던 모습이 마음을 한가득 점령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떨고 있는 손등이 내 시야를 덮쳐서 나의 이성과 사고기능을 집어삼켜 버렸다.
세상에나, 이 여인 정말 40살을 넘은 게 사실일까? 희고 정갈한 손마디의 바르르 떨리는 모습이 신비롭게 비쳤다. 하얀 손마디.. 마음대로 만져도 될 듯 정지해 있는 여인의 상체. 나는 깊은 정적 속에서 전신이 마비된 듯 꼼짝하지 않은 채 손마디만을 파르르 파르르 떨고 있는 순간이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내 마음이 그녀의 마음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아.. 이럴 땐 어떡하지?
아름다운, 엽(葉)의 손을 저 대로 놔두어선 안되는데..
당황한 나는 스킨십을 감행하려던 초심을 망각한 채, 거의 동물적 본능으로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나의 손이 얹히자 그녀의 맑고 투명한 손은 비로소 떨림을 멈추었다. 애초에 소망했던 것은 아닐진대, 이상하게도 내 육신에서 다른 스킨십을 시도하는 뻔뻔한 흑심은 새어 나오지 못했다. 단지.. 그 기묘하고 신묘했던 순간으로부터 그녀를 무사히 탈출시켰다는 안도감만이 충일했다. 그때, 그녀가 보였던 <바르르 떨림>은 쓰나미보다 더 큰 파도가 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내 삶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나의 인생에 예고 없이 투하된 '리틀 보이'였으며, 다시 겪을 수 없는 고정관념의 '무장해제'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졌다.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경이로운 감정을 느꼈는지 알고 있을까? 진정 알고 있을까? 아니 절반 만이라도 느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녀와 헤어지기 전 나는 그날의 감동을 한 번도 고백한 적이 없었다. 스쳐 지나가듯 내비친 적도 없었다. 나는 연애의 낙제생이었던 것이다. 아주 평범한 단어를 나열해도 좋으니 표현했어야 했다. 이제 어떻게 나의 마음을, 그녀로부터 전달받은 사랑의 감정을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을는지.. 아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 이 큰 아쉬움이 온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그 사랑스러운 떨림의 경험을 이제 영영 다시는 체험할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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