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25/03 28

그녀와 나 사이에 '희망'이란?

​지금 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당시 철강회사 생산공장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지방 해안도시인지라 나홀로 직장이 위치한 그 도시에서 주중이면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기숙 겸 아파트와 공장을 왔다리갔다리 하며 생활하고,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서울로 씽씽 왕래하는 처지였다. 그럼 가족 구성원은? 나에게 가족이라고 해봤자 연로하신 어머니와 성인이 된 두 딸이 전부다. 아이 엄마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지 몇 해던가.. 암튼, 나는 주말이면 서울 집으로 올라와서 어머니와 딸을 보고 다시 지방도시로 내려가 직장 생활하는 삶의 쳇바퀴를 타는 다람쥐였다. 다람쥐는 한해, 두 해를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반복해서 굴러먹어도 불평이나 새로운 모색을 할 생각이 없는 존재다. 그런 나에게 ..

with Daughter 2025.03.28

사유 17호 - 서대경

사유 17호-서대경 사유 17호는 언제나 동네 17번 마을버스 정류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비오는 여름날 정류장에서였다. 사유 17호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차양 끝에 엉긴 물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때 절은 추리닝 차림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옆구리에 끼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그가 말했다. 그곳엔 그와 나 둘 뿐이었으므로 나는 네, 안녕하십니까 하고 대답해주었다 비가 내리는군요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내가 말했다. 어제도 비가 내렸습니다. 장마기간이니까요 내가 대답했다.퇴근 후 정류장에 내렸을 때도 사유 17호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고 차양 끝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곳엔 ..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2 - 야간 순찰 체험

12   지난밤 히타이트는 야간순찰 체험 여행을 했다. 꼬레아 철공소는 유럽의 그것보다 상당히 삭막해 보였었다. 드넓은 철공소 안에는 끓여 낸 쇳물을 토피도라 불리는 차에 싣고 철길을 따라 다음 공정이 진행되는 공장으로 이송하는 구간이 존재한다. 히타이트가 20년 전 유럽의 부자나라 덕국(Germany)을 방문했을 때 내륙지방에 위치한 철공소를 견학한 적이 있었다. 그 나라의 철공소는 마치 전원지방에 자리 잡은 것 마냥 아름답고 목가적이었다. 쇳물을 실어 나르는 철길 위의 토피도카를 보면 시골여행을 나와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대자연 속에 숨 쉬듯 어울리는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는 덕국의 철공소는 히타이트가 지구행성에서 처음으로 접해 본 대장간이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꼬레..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1 - 프리미어 12

11  히타이트는 지난주 색다른 체험을 했다. 여행지에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색다른 경험이었다.  꼬레아는 원숭이국과 견원지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그렇다고 꼬레안이 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언제나 경기외적인 혹은 실력외적인 요소가 작용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그 경기외적인 요인이란 과거 꼬레아국을 점령했던 원숭이에게만은 결코 지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본능적 오기가 꼬레안 대표선수들에게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축구경기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있었다. 본능적 오기가 발동되는 기제는 과거의 식민지 역사 위에 덧칠 입혀지듯 축구경기가 가지는 시대적 화두가 점철되어 있는 데 있었다.  축구란 직접적으로 몸을 부딪히며 하는 경기인데다가..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10 - 그해 오월

10  어느 날 히타이트는 꼬레아의 낡은 앨범 속에서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았다. 그 사진은 히타이트가 지구별 꼬레아땅으로 온 다음 해 푸른 오월에 벌어진 아주 중요한 사건현장을 담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니 중앙에 당당한 자세로 버티고 선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별 두 개 달린 군복차림의 남자가 있다. 오, 그건 바로 닭여왕의 아비 장닭이 아닌가. 장닭 한 마리가 그 주위를 호위하는 왼편의 장끼, 그리고 오른 편의 오골계 한 마리를 아우르며 뻐기듯이 서 있는 것이었다...  그해 푸르른 오월하고도 열여섯째 날, 꼬레아를 장악한 장닭은 이후 18년간 군부지도자, 일반 지도자, 막강한 지도자를 거쳐 영도적 지도자가 되어 동강 난 반도 남반부를 쥐락펴락 통치하였다. 그리고 사진 속의 함께한 인물..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9 - 핵을 둘러싼 난리

병신년이 밝았고, 꼬레아는 말대로 전 세계 인민들에게 병신이 되어 개쪽이 팔리고 말았다. 꼬레아 일군의 평론가들은 북쪽 아그들이 예측불가한 존재라서.. 운운하며 북쪽에 은거하는 늑대 무리를 왜곡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북쪽 아그들은 일관되게 핵무기를 개발하여 왔는데 손자 돼지의 성격이 괴팍해서 그것을 예측 못했었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이미 북의 늑대 무리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은 에서 의 영역으로 내려온 지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외치는 남 꼬레아 정부는 콘돌의 속국이나 다름없음을 이미 만천하에 공표해 왔던 전력을 보였는데, 작금의 상황 -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 이 도래하였음에도 을 고수하겠노라는 의지(=똥고집)..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8 - 강호접전

8 양들은 침묵하고 있다. 양들은 자기들이 일꾼으로 뽑아 놓은 개들과, 같은 초식동물이라 착각하여 세웠던 암탉이, 온 천지의 재물을 자기들 것인 양 취하고 먹고 마시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황금 감투를 놓고 서로 차지하겠노라 싸움질 벌이고 있는 풍광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양들은 순하여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런 속성을 잘 아는 개들은 양의 털을 깎아서 취하고 양들 모르게 특정 양을 도살하여 고기를 취하는 등 야비하고 잔인하게 뱃속 채우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히타이트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과거 멸치 거사와 펭귄 신사가 민추협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경쟁자이면서도 민주화의 열망 밑에 하나로 뭉쳐 결국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였을 ..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7 - 여름날의 추억

7  꼬레아 반도는 7월이면 장마가 온다. 8월부터 9월 사이에는 태풍이 올라온다. 그렇게 여름을 식혀주고, 대지에 물을 공급하여 초목이 성장하도록 하는 반면에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바다를 유영하지도 못하여 오로지 땅에 붙어서 사는 종족들은 장마가 오거나 태풍이 불 때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바람과 비의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흙담과 산사태와 뿌리 뽑힌 나무들에 의해 생명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장마와 태풍은 한편으론 이롭고, 한편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해로운 힘으로 받아들인다.  장마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흐린 날과 습기와 빗물을 우산과 장화로 버텨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태풍이라는 놈은 생명을 빼앗아가거나 소중하게 쌓아 올린 삶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살다 보면 알게 ..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6 - 구중심처 회의 풍경

6 이건 전 우주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인데, 여행가는 머나먼 타국의 생소한 지경을 떠돌다가 몸이 아픈 상황에 봉착하면 곧잘 여행길에 오른 걸 후회한다. 히타이트에게도 역시 그런 날이 있다. 여행이 항상 즐거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맥이 풀리는 듯했다. 이유 없이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나, 만화영화 세븐데이즈 속의 상황처럼 하늘이 검게 가리어져 마음마저 먹물을 머금은 듯 어둡게 가라앉은 날이 장마철의 습기처럼 눅진눅진하게 엄습해 올 때, 누군가가 강력한 충격을 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다면 좋을 텐데.. ​끄으응~히타이트는 귀차니즘에 빠진 몸을 추스리며 여행지의 동향을 살폈다. 국무회의 자리에서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원내대표..

South Korea Story 2025.03.23

제1장 은둔지국의 닭여왕 / 5 - 월담 현상에 대한 고찰

5  지금까지 여행기를 읽어본 이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히타이트는 지구 행성인이 아니며, 여행을 목적으로 저 먼 우주로부터 이곳 지구별에 잠입하여, 20여 년간 꼬레아 반도 소풍 준비를 마친 다음, 30여 년에 걸쳐 반도 이곳저곳을 여행 중에 있다는 특급 비밀을... ​'아~ 이거 특급비밀인데..내가 은하제국의 원칙을 개무시하는 실수 저지른 건 아니겠지?' 히타이트는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 지구별 여행도 끝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깨달음이 어떻게 자기 뇌리에 각인된 건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그건 이를테면 묵시적으로, 혹은 계시적으로 알게 된 '운명'이었다. 얼마 전 양키족이 출시한 '터미네이터'라는 성인용 영화의 첫 장면을 보았을 때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혹시 내가 저..

South Korea Story 2025.03.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