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Daughter

통찰

hittite23 2025. 3. 3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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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은 채 사유하는 여인


약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마음이 수수로웠는지 딸의 알바인생의 전말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동안 딸은 동네의 편의점에서 알바자리를 구하려 면접일자를 받아 놓은 상태에서 인천공항 입주 편의점에 사표를 냈다.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 다음 사표 내도록 누누이 조언을 주었건만 둘째는 내가 그렇게 하는 걸 승인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내 기억엔 승인해 준 적이 없는데 둘째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잠정적인 승인의 처사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둘째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내가 살면서 후회한 것 중 하나가 있다.

자식들이 미성년자일 때 주택청약저축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 필요성과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냥 깜빡하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게 1, 2년에 벌어진 일도 아니고 10년 이상의 세월을 그런 생각을 품었다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채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딜 지경이 되었다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변명의 구실도 허락되지 않는 온전히 나의 잘못, 나의 무책임한 처사였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돌싱카페에 들어가서 여인들과 섬씽을 성사시키려 정신이 팔려 살았던 것이다. 아내가 있었다면 나의 어처구니없음을 바로 잡아주는 교정기능이 발휘되었을 수도 있는데 아내가 없는 삶이니 엉뚱한 곳에나 쳐다보며 헛고생하며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직장에서는 계속되는 승진 압력에 정신이 여유를 가지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대학졸업자들은 직장에서 그때그때 다음 단계로 '승진'이라는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자의 반 타의 반 퇴직의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그건 한국사회에서 묵시적으로 관례가 되어 있는 사회분위기, 시스템 뭐 그런 거였다. 때문에 그런 직장생활에 살아남으려 용쓰느라 정작 내 삶의 이익실현 구조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맹추 같은 놈이었다.

 

일단 나는 늦게나마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에 신청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서울 주소지인 할머니 거주지로 옮겨 주택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한다. 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헛다리 잡은 행위에 다름아니다. 수도권 거주자이면 서울거주자가 아니라도 서울 아파트 청약에 신청할 수 있는 건데.. 이러한 사정은 사정대로 복잡한 상태로 일이 안 풀리고 있었고, 둘째 통장에 입금하는 것도 지지부진했다. 나는 둘째의 지속 가능한 알바인생에 확신을 가질 수 없어 두 달간 한 달에 30만 원씩 둘째가 나에게 계좌이체한 돈 60만 원을 그냥 내 통장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이렇게 푼돈이나마 저축이라는 형태로 모아두었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둘째가 다시 알바를 구할 수 있으려나?

집에서 가까운 편의점 면접을 보았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녀석은 마트에서 일하는 건 마음 내켜 하지 않았고 두어 군데 알아본 편의점 알바자리도 찾는 게 마땅치 않았다고 여겼는지 주유소 알바를 시도했다.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인내심이 약한 녀석이 옥외에서 주유 업무를 성실하고 꾸준하게 수행해 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능하면 지원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녀석이 면접을 보러 간다 하기에 주유소까지 같이 따라갔다. 딸 혼자 면접을 보라고 들여보내놓고 나는 주유소 근처 길가를 서성이며 녀석의 면접에서 무슨 정보가 얻어졌는지(얘기가 오갔는지) 녀석이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주유소 사장이 일을 잘 해낼 거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 나와서 일하는 걸 지켜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그러면서 자동세차가 안 되는 차량의 수동 세차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첨언하였다고 한다. 결국.. 둘째는 나의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그다음 날 주차장에 나가지 않았다.

 

며칠 후 둘째는 방문 교사 알바하는 게 어떻겠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급여는 편의점 알바보다 좋은 듯했다. 그러나 여러 가정을 찾아다니며 유초등생 가르치는 일이 만만치 않을 듯싶었다. 교통비 지출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추운 겨울날 흩어진 가정을 찾아다니며 가르치는 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업체에서 발행하는 교재 판매에 대해서도 은근히 얘기를 꺼내고 있는 걸 보니 교재 판매원으로 전락당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였다. 세상이 간단치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가능하면 한 곳에 정주해 있으면서 신체적으로 노동강도가 크지 않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둘째의 알바 일자리를 알아보려 인터넷 알바천국에 접속하여 서핑하다 보니 전화로 고객상담하며 항공사 티켓 발권하는 직종이 있었다. 월급 255만 원까지.. 그 정도면 둘째에게 괜찮은 듯하여 지원해 보라고 전화를 넣었다. 그러고 나서 모집요강을 좀 더 훑어보니 자격요건이 있었다. 초대 졸에, 토익 470점 이상을 요구한다. 녀석은 토익시험을 치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점수를 수령해 놓은 근거가 없었다. 일단은 포기할 수밖에...

두서너 달 알바를 하면서 경제활동을 해본 이력이 돈 벌지 아니하고 집에만 있는다는 게 스스로 견딜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요즘말로 '현타' 라고 하는 것. 암튼, 둘째는 다시 동물 병원 보조원, 커피숍, 강원랜드 안내원.. 등등의 알바직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금..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영어공부해서 토익점수를 딴 후에 항공사 콜센터에 도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는데 둘째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둘째가 스스로 앞가림할 수 있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녀석의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없으니 둘째가 스스로 일어서는 기술습득에 대한 조급함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지금,

나의 무능함에 가슴 시리도록 아픈 통찰을 하고 있다..

 

통찰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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